[남극점 탐험]12월7일 8일째 게시판 격려글에 힘을 얻는다

입력 2003-12-09 17:45수정 2009-09-28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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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화이트아웃에 아침바람은 비교적 잠잠함

기온 : 영하 10도 /운행 중 영하 18도

풍속 : 초속 7.6m/최대풍속 8.5m

운행시간 : 07:30 - 18:00(10시간30분)

운행거리 : 24.3km (누계 : 89.5km)

야영위치 : 남위 80도40분 591초 / 서경 80도49분426초

고도 : 892m

아침 바람이 그다지 세지 않아 대원들은 운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의욕이 넘친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준비가 자연스럽다. 온도계는 영하 10도를 가리켰지만 몸에 와 닿는 바람에 체감온도는 한참 낮다. 추울 때는 빨리 썰매를 꾸려 출발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몸을 움직여야 열이 나고 시린 손도 곧 따뜻해진다.

출발 시야가 썩 좋지 못하다. 남쪽 먼 하늘이 조금 환 할뿐 하늘은 잿빛 구름에 완벽하게 가려 있다. 다행히 발밑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 걷는데 큰 불편은 없다. 앞서가는 박대장은 수시로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방향을 찾아 나선다. 나침반 보는 일을 게을리 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그만큼 손해다. 체력소모, 시간소모, 거기다 대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진다. 12시경, 하늘이 열리려는 듯 엷어진 구름사이로 해가 비친다. 순간 대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4일 만에 보는 해다.

운행 중에는 썰매를 끌고 일렬로 간다. 어떤 때는 일렬로 나란히 걷다가 잠깐 볼일이라도 보고나면 그 시간만큼 간격이 벌어지기도 한다. 붙어 가든 떨어져 가든 운행 중에는 대원들 간에 말을 할 수 없다. 3시간마다 멈춰 서서 바람 등지고 간식 먹을 때 잠깐 오가는 대화가 전부다. 그렇게 하루 세 번 얼굴을 맞대고 하는 말이래야 고작 컵에 음료(기능성 고칼로리 음료 파시코)를 따라주며 건네는 "형, 여기요"가 전부다. 혹은 가야 할 길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이 대부분. 그것조차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땀에 젖은 몸이 떨려 서있는 것보다 먹자마자 출발하는 것이 대원들에게는 더 급하다. 박 대장도 대원들의 이런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간식을 먹자마자 맨 먼저 썰매 벨트를 매고 출발하자고 한다.

잠깐 비치던 해가 다시 구름 속으로 쏙 숨어 버린다. 바람마저 심란하게 다시 불기 시작한다. "혹시 블리자드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걱정돼서 불어오는 쪽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구름이 짙어지고 기온은 떨어지고 젖은 몸에 체감온도까지 급강하하니 죽을 맛이다. 삼중 벙어리장갑을 낀 손까지 시리다. 문득 남쪽 방향에 가로 놓인 언덕이 탐험대의 발길을 묶는다. 박대장과 이현조 대원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우회할 것인지 정면 돌파 할 것인지 상의를 하더니 정면 돌파로 빠르게 결론이 난다. 말없이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박대장의 뒤를 대원들 역시 말없이 따른다. 비탈눈길을 오르는 길은 그런대로 오를 만했다. 눈의 상태가 좋아서 썰매가 잘 끌렸다. 그러나 다 올라 왔다고 생각되어 고개를 들어 보면 또 오르막이고 눈이 분설로 바뀐다. 썰매가 한사코 주인을 따라 나서기 않겠다고 도리질을 해댄다.

오후 5시, 마지막 간식을 먹을 무렵에는 화이트 아웃이 온 사방을 감싼다. 간식을 먹자마자 운행을 재개하는 대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발밑은 부비트랩과 같다. 언제 꺼질지, 어느 때 솟구칠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걸 잘 아는 박대장이기에 12시간 예정의 운행을 1시간 30분 앞당겨 6시에 종료하고 야영준비에 들어간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위성전화를 연결하여 먼저 이틀간 들어 온 격려의 글들을 본다. 대원들은 막내 이현조 대원이 읽어주는 내용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오늘은 대부분 이현조 대원을 '격려 찬양 고무 그리워' 하는 글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촌의 안부를 묻는 조카에게 이현조 대원은 "잘 있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것는디…"하며 입이 귀밑에 가 붙는다.

탐험 8일째를 맞는 대원들 모두 건강하고 남극의 추위와 기상조건은 각오하고 왔기 때문에 건곤일척(乾坤一擲)하여 결자해지(結者解之)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눈빛으로 느껴진다.

***乾坤一擲:자신의 운명을 걸고 온힘을 기울여 승부를 겨루는 것.

***結者解之:처음 일을 시작한 사람이 그 일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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