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박세리 "지는게 죽기보다 싫어요…2등 알아주지 않잖아요"

  • 입력 2003년 5월 14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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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방문은 언제나 즐거워.’ “해가 갈수록 성적만큼이나 예뻐지고 세련돼진다”는 말을 듣는 박세리가 14일 귀국 직후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제공 굿데이
‘고국 방문은 언제나 즐거워.’ “해가 갈수록 성적만큼이나 예뻐지고 세련돼진다”는 말을 듣는 박세리가 14일 귀국 직후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제공 굿데이
“저는 지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골프에서 2등을 누가 알아주나요.”

14일 금의환향한 ‘골프여왕’ 박세리(26·CJ). 올 시즌 미국LPGA투어 8개 대회에 출전해 2승(다승선두)에 ‘톱10’ 5차례로 상금랭킹 선두(56만2900달러)를 달리고 있어서인지 표정이 밝았다.

시차적응을 위해 항상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는 박세리는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빠른 오전 5시경 인천공항에 내렸다. 간단한 귀국인터뷰를 하고는 바로 숙소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로 향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단독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 박세리를 힘들게 설득해 호텔 로비에서 마주앉았다.

올 시즌 그의 2승(세이프웨이핑, 칙필A채리티)은 모두 최종 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치며 거둔 짜릿한 역전우승. 그 승부사의 기질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2등은 소용없다. 국물도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지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는 없겠지만 저는 특히 더해요. 프로골퍼가 된 이후에는 그것을 더 절감했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연장불패’(4전4승)와 최종 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강한 정신력 때문이라는 얘기다.

“연장전에 들어가도 전혀 떨리거나 긴장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편이죠. 주말에 특히 성적이 좋은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체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좀 낫기 때문일까요. 1, 2라운드에 잘 치면 수월하게 우승할 수 있을 텐데…(웃음).”

시즌 중에도 월 화요일은 웨이트트레이닝, 수요일은 유산소운동(자전거 타기 등)을 하는 박세리. 무쇠다리로 대표되는 강한 체력의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인터뷰 도중 함께 귀국한 전담캐디 콜린 칸(34·영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세리가 출전하는 2003MBC X-캔버스여자오픈의 대회장소인 88CC 코스 답사를 하려고 하니 협조 요청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완벽한 조건에서 주인(박세리)에게 서비스하려는 칸의 성실성이 느껴진다.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 피곤한 몸으로 바로 코스를 점검하겠다니….

“칸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하고 싶어요. 미국진출 후 우리나라 대회에서는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거든요. 지난해 CJ나인브리지대회는 미국LPGA투어였으니까요.”

올해 첫 승을 기록한 세이프웨이핑 최종 4라운드 17번홀(파4) 12m짜리 파퍼팅과 칙필A채리티 최종 4라운드 연장전 3번째홀 버디퍼팅(4.5m)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박세리는 어땠을까.

“승부가 걸려 있는 중요한 퍼팅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우승이 확정된 후 최종 홀에서 남겨둔 짧은 퍼팅 때 떨려요. 실패하면 창피하잖아요(웃음).”

‘라이벌’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대해서도 박세리는 담담했다. 비제이 싱(피지)이 소렌스탐의 PGA도전을 비난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그는 “미국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아요. 그러나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니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나도 관심은 있지만 우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어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라고 은근히 소렌스탐을 두둔했다.

“소렌스탐이 확실히 비거리는 늘었더라고요. 저보다 평균 10야드가 더 나가요. 그런데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별 문제가 안 됩니다. 제 아이언샷 거리는 다른 선수들보다 평균 한 클럽 내지 한 클럽 반 정도 길거든요.”

언제나 그랬듯 박세리에겐 자신감이 넘친다. 그 자신감이 그를 미국LPGA 정상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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