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투병 남승룡옹 "손옹과는 둘도없는 친구…"

  • 입력 2001년 2월 19일 18시 41분


96년 9월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승룡옹(왼쪽)과 손기정옹.
96년 9월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승룡옹(왼쪽)과 손기정옹.
“빨리 생명줄을 놓으면 차라리 더 편안하실텐데….”

19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경찰병원 3층 중환자실. ‘비운의 마라톤 영웅’ 남승룡옹(89)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본 막내딸 순옥씨(53·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거주)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대쪽같은 기개에 조그만 잘못에도 불호령을 내렸던 무서운 아버지. 영화를 좋아해 2남4녀를 모두 데리고 자주 영화관을 찾았던 자상했던 아버지. 평생 매일 2∼3시간씩 뛰어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생기에 넘쳤던 아버지가 의식을 잃은채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혼자셨는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혼자’이시네요.” 순옥씨의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손기정 선생님의 그늘에 가렸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3등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1등이 우대받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마라톤발전을 위해 노력한 아버지는 영원히 존경받으실 겁니다.”

남옹의 부인 소갑순(79)여사는 “항간에 손 선생과 사이가 안좋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두분은 둘도 없는 친구였어요. 남편이 외부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했어요. 성격탓이지요”라고 말했다. 남옹은 집안에서 책 읽고 짬짬히 운동하는 게 전부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번 안하는 남편이었다. 이런 남편을 두고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게 살아온 소 여사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먼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내고있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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