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백두산 트레킹]걸음마다 열리는 「들꽃 도원경」

  • 입력 1997년 8월 14일 07시 41분


《하늘의 구름처럼 구릉의 초원을 띄엄띄엄 뒤덮은 들꽃의 흐드러짐. 천지로 오르는 산등성과 제자하로 내닫는 계곡은 군데군데 연보라와 진노랑, 우유빛과 잉크빛으로 물들여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백두산, 민족의 어미산이다. 한라산 능선처럼 넉넉하게 펼쳐진 천지 아래 서쪽 백두산 구릉은 곳곳에 수더분한 들꽃이 무리져 피어 신기하기만 하다. 이 곳을 최근 야생화 전문가 김태정박사가 찾았다. 대학생 탐사팀도 그 뒤를 따랐다. 서쪽능선에서 처음으로 행글라이더가 뜨기도 했다. 이제 백두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야생화 트레킹. 그 중에서도 올해 최초로 시도된 백두산 서쪽능선의 트레킹을 소개한다.》 백두산. 하루 열다섯시간반을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발걸음 하나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6월말 천지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광대한 서쪽구릉은 모두 꽃밭이다. 진노랑의 구름국화며 보라색의 하늘매발톱, 분홍의 개불알꽃, 백합을 닮은 날개하늘나리, 귀부인을 연상케 하는 두메양귀비 등등. 그 모습만큼 예쁜 이름의 야생화들이 수천 수만평 구릉과 기슭에 무리져 피고 진다. 황소도 날린다는 무서운 백두산 바람도 이 들꽃 무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 해발 1천4백m지점의 한온캠프장. 천지를 둘러싼 16기봉중 천문봉 백운봉 청석봉 옥주봉 제운봉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는 곳이다. 태고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연못 왕지, 키가 1m를 훌쩍 넘는 갈대 비슷한 박새군락지, 그리고 야생화가 무리져 피는 곳이다. 평생을 야생화 연구에 바친 김태정박사(55)가 지난 6월말 처음으로 서쪽능선을 찾았다. 광대하게 펼쳐진 서쪽구릉의 야생화 군락지를 누빈지 1주일. 서울로 돌아온 그는 그 아쉬움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 31일 또다시 백두산을 찾아 1주일을 더 머물렀다. 첫 탐사에는 전국의 대학에서 모인 대학생 13명도 동참, 원시적 자연을 체험하고 청석봉 아래 백두산 구릉을 행글라이더로 활공하기도 했다. 또 사진작가 김봉익씨(45)와 비디오작가 최희주씨(45)도 함께 참가했다. 캠프장을 떠나 천지로 향하는 길. 키 20㎝ 내외의 작은 관목숲에서 수백㎞를 뒤덮은 사스래 이깔 소나무의 원시림 수해(樹海), 박새군락에서 바이칼 꿩의다리, 금매화, 보라색 붓꽃이 피는 벌판과 계곡을 지나 천지 아래서는 잔설을 뚫고 고개를 내민 땅꼬마 노란 만병초까지 만난다. 수직고도차 1천2백m의 백두산 서쪽능선 트레킹의 매력은 바로 이런 다양한 고도에서 자생하는 원시 그대로의 식물상을 감상하는 데 있다. 그런 후에 만나는 천지. 그 분화구가의 바람 잦은 바위산에도 꽃들은 어김 없이 피어 있다. 〈조성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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