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잃은 은반요정 고르디바 『올해는 꼭 재기』

입력 1997-01-04 20:06수정 2009-09-2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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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勳기자」 너무 길었던 한해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날. 그리고 1년이 흘렀다. 18개월된 딸아이만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무심한 남편. 하지만 살아야했다. 북받치는 설움도 눈물도, 딸아이의 초롱한 눈망울속에 묻어야했다. 「짝잃은 백조」 에카테리나 고르디바(26). 그녀에게 지난 1년은 남편의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뼈에 사무치게 일깨워준 한해였다. 95년 11월 쌀쌀한 초겨울. 리프트 동작 연습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일으킨 남편 세르게이 그린코프가 허망하게 떠나간 뒤 그녀는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고 눈물속에서 3개월을 흘려보냈다. 11세때인 지난 82년 당시 소련 체육기구가 수줍어하던 두 어린이를 페어스케이팅 커플로 맺어준 이후 언제나 남편은 곁에 있었다. 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 페어스케이팅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때도, 94년 릴레함메르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제패할 때도…. 다시는 스케이트를 신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셔와 어린 딸 데리아를 맡겼다. 그리고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싱글로의 새 출발. 짝잃은 백조의 슬픔을 산산이 부서지는 은빛 조명위에서 온 몸으로 그려냈다. 관중 모두가 고르디바가 되어 백조의 죽음을 슬퍼했다. 갈채가 쏟아졌다. 올해 그녀의 목표는 다시 페어스케이팅 짝을 찾는 일. 가능하다면 이제 세살이 된 데리아에게 훌륭한 아빠를 구해주고도 싶다. 한없이 슬프지만 남편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사람. 이제 짝잃은 한마리 백조가 방황의 날개를 접고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그에게 재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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