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5일 전북의 한 초등학교. 5, 6학년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1박 2일간의 수학여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45명인 학교에서 상급생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교정은 조용했다. 오후 3시경, 적막을 깨고 교무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이들이 목말라 죽겠다는데 물은 없고 거기 인솔자도 없다네요.” 5학년 학부모 김모 씨의 전화였다. 수학여행을 간 아이가 물을 못 마시고 있는데 돌봐주는 선생님도 없다는 것.
당시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현장에는 교감과 담임 교사가 동행했고 학생들에겐 음료수도 나눠 준 상태였지만 김 씨는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도 김 씨의 문자메시지에 시달리던 담임 교사는 같은 달 30일 휴직했다.
그 후로 1년여간 학교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예전에도 ‘오예스를 간식으로 나눠 주지 마라’ ‘수업 중 자세를 지적했다’ 등 여러 차례 항의했던 김 씨는 수학여행 이후 더 많은 민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한 담임 교사 송모 씨(42)는 ‘아이를 째려봤다’는 등의 이유로 아동학대범으로 몰렸다가 오명을 벗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학교로 여러 차례 출동해야 했다.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이 자녀를 전학 보내면서 전교생은 20여 명으로 반 토막 났다. 학교는 고심 끝에 수학여행을 올해부터 당일치기 현장 학습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표면상으론 안전을 이유로 들었지만, 송 교사는 “단 한 명의 민원 때문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고 했다. 1%도 안 되는 소수의 민원이 다수의 일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615일간의 과정을 살펴봤다.
“아이들 목말라 죽겠다해” 등 줄민원… 2년간 담임 6번 바뀌어
[1% 민원에 휘둘리는 사회] 〈1〉 초등학교 ‘1박2일’ 수학여행 실종기 “불량식품 주지 마라” “수업중 째려봤다” 잇단 항의에 담임 수시로 교체… 학대 신고도 교권보호위 ‘교권 침해’ 인정했지만… 민원 학부모 전용 ‘교감 직통폰’ 생겨 교사 “경찰 자주 찾아와 수업에 차질”
● 오예스로 시작된 담임 교체
교사들이 기억하는 김 씨의 첫 번째 민원은 2024년 6월 20일, 과학 교사가 나눠준 오예스 때문이었다. 김 씨는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전화해 따졌다. “학교에서 불량식품 안 먹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집에서 (오예스는) 불량식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어요.”
보름 뒤인 7월 2일에는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김 씨의 자녀가 반 친구와 다툼을 벌이자 담임 교사가 둘을 각각 불러 상담했는데, 이를 두고 “교사의 권한을 이용한 과도한 지적은 명예훼손이자 학대 의심 행위”라고 경고한 것. 이후 담임 교사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며 병가를 냈고, 끝내 교단을 떠났다.
이후 55일 동안 교사 3명이 그 반을 거쳐 갔지만 누구도 한 달 이상 담임을 맡지는 못했다. 그중 한 교사가 아이에게 수업 중 자세를 지적한 것을 두고도 김 씨는 교감에게 전화해 항의했다. “자세가 살짝 흐트러지면 (교사가) 와서 등을 찌르고 가서 아기가 아프다네요. 그게 선생이 할 짓이에요? 미치지 않고서야.”
김 씨와 학교의 갈등은 다섯 번째 담임 교사가 부임한 9월, 수학여행에서도 반복됐다. 학교에 따르면 당시 아이들은 오전에 이미 음료를 나눠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 씨는 담임 교사가 휴직하기 전까지 ‘아이의 건강 상태에 대해 (전임자로부터) 인계받지 못했냐’ ‘누구 잘못인지 따져보자’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반 담임은 총 6번 바뀌었다.
● ‘교권 침해’ 인정됐지만 처분 불응
갈등은 해가 바뀐 뒤에도 계속됐다. 김 씨는 새로 부임한 담임인 송모 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수업 중에 교사가 자녀를 째려 봤다는 등의 이유였다. 해당 교사는 입건되지 않고 사건은 종결 처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김 씨 등의 신고로 학교에 경찰이 출동한 횟수만 8번에 달했다. 송 교사는 “하도 경찰이 자주 오다 보니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밖으로 누가 지나가면 두리번거리게 됐다”고 했다.
학교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관할 교육청은 피해 교사들의 요청에 따라 2024년 10월과 지난해 6월 두 차례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었다. 교보위는 교사의 교육 활동을 침해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조치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구로 사건과 무관한 교사와 학부모, 변호사, 경찰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교보위는 김 씨의 교권 침해가 인정된다며 그에게 특별 교육 30시간과 심리치료 15회를 이수하라고 통보했다.
특별한 사유 없이 교보위의 처분에 불응하면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지만, 김 씨는 특별 교육과 치료를 모두 받지 않았다. 관할 교육지원청이 실시한 상담 프로그램에도 교사들만 참여했다. 여기에 참여한 한 교사는 “이 프로그램을 교사만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고 했다.
2024년 12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는 김 씨를 담임 교사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교사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이를 취하했다. 해당 교사는 ‘교육청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취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내용들이 알려지자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학교를 찾아 현장 의견을 듣기도 했다. 최 장관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중대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에 엄정하게 대응하기 위해 관할청 고발과 학교장 처분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교감 책상 위의 ‘검은 전화기’
하지만 당국이 내놓은 해법은 교사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올해 3월 16일, 학교 교무실에는 낯선 휴대전화가 하나 생겼다. 관할 교육지원청의 제안으로 개설된 이른바 ‘직통 업무폰(핫라인)’이었다. 김 씨가 “학교와 소통이 어렵다”고 하자 교육지원청이 학교 측과 협의해 교감에게 바로 연결되는 전용 회선을 마련해준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학부모들이 들끓었다. 김 씨의 지속적인 민원 이후로 다른 학부모들은 간단한 상담을 하려 해도 교무실 내선 번호를 거쳐야 하는 등 소통 채널이 과거보다 복잡해졌는데, 오히려 김 씨에게는 민원의 문턱을 낮춰준 셈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이 학교에 다니는 40대 학부모는 “조용히 학교를 믿고 따르는 부모에게는 (교사의) 개인 연락처도 안 알려주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용 전화기를 내주는 게 상식이냐”며 “나도 악성 민원인이 돼야 하나 회한이 든다”고 했다. 관할 교육지원청 담당자는 “전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원활하게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휴대전화를) 지급했다”며 “특별 대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알려진 내용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수학여행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이가 지병이 있어 물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당시 2시간째 놀이기구 순서를 기다리던 중이라 아이가 직접 사러 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에버랜드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교사들이 아이를 방치한 채 카페에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교보위 통보에 대해선 “관련 서류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김 씨는 최근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담임 교사로부터 자녀를 분리해 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고 있다. 송 교사가 단체 대화방 등에서 학생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또 그는 오예스에 대해선 “유통기한 문제도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직했던 복수의 교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 ‘당일치기’가 된 수학여행
결국 이 학교는 올해 3월 1박 2일 수학여행을 포기했다. 총 4차례의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일치기 현장 학습으로 대체하면서 프로그램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놀이공원에서 학생이 직접 동선을 짜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사 인솔하에 이동하게 했다.
적잖은 학부모와 학생이 1박 2일 수학여행을 유지하길 원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5, 6학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1일 1회형 △1일 2회형 △기타 등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상자 9명 중 3명은 선택지에도 없던 ‘1박 2일 부활’을 적어낸 것. 의견 칸에는 “왜 꼭 당일치기여야 하나” “심도 있는 체험을 위해 1박 2일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도 함께 달렸다. 한 교사는 “학생에게 1부터 10까지 지시하는 건 교육이 아니다”라며 “수학여행을 통해 자기 주도적 학습을 기를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뺏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달라진 건 수학여행만이 아니었다. ‘학년 간 갈등을 예방한다’며 점심시간 운동장 이용 요일을 학년별로 구분하는 규칙도 새로 생겼다. 교내 물놀이 행사도 또 다른 분란이 생길까 봐 취소될 뻔했다. 한 저학년 학부모는 “아이가 ‘축구를 같이할 수 있는 친구가 3명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11일 오후 전북의 한 도시 외곽에 있는 이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빈 채 고요했다. 교사들에 따르면 2년 전만 해도 운동장에서는 학년 구분 없이 뒤섞여 축구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줄지어 전학을 가면서 전교생은 지난해 27명으로 쪼그라들었고, 올해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자녀가 이 학교를 졸업한 한 학부모는 “김 씨의 민원 이후로 담임 교사가 수시로 바뀌었고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많은 친구가 떠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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