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학 재정 어려우면 국가 경쟁력 문제…경계 허물고 함께 성장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8일 17시 57분


대교협 신임 회장 이기정 한양대 총장 인터뷰

신임 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정 한양대 총장이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총장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신임 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정 한양대 총장이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총장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양대의 경우 2009년 약 76억 원이었던 전기요금이 최근 147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등록금이 동결된 사이 인건비, 시설 유지비, 안전 관리비, 4대 보험 등 각종 고정비가 증가해 대학이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크게 줄었습니다.”

제30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정 한양대 총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등록금 규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 4년제 대학 10곳 중 6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일시적 재정 압박이 아니라 미래형 대학으로 전환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공지능(AI) 전환, 융합 교육, 글로벌 경쟁력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재정이 뒷받침 안 되면 개별 대학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경쟁력이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을 취임식 다음 날인 5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ㅡ최근 대교협 설문조사에서 총장의 관심 영역 1위가 재정지원 사업이었다.

“지금 대학은 성장은 요구받지만 재원이 묶여 있다. 특히 사립대는 재정의 60~70%를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라 압박이 훨씬 크다. 이로 인해 신규 전임교원 채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대학은 정년퇴임 인원을 충분히 충원 못하거나 몇 년간 채용을 최소화했다. 이는 곧 강의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 인프라 투자와 첨단 분야 전환도 지연된다. AI, 반도체, 바이오 등 국가 전략 분야로의 전환이 요구되지만 고가 장비 도입이나 실험실 리모델링을 미루는 대학이 많다. 노후 시설 개선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교수 연봉의 실질 가치가 장기간 정체되며 인재의 수도권, 해외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 국립대의 경우 인건비 일부는 국가가 부담하지만 시설 유지와 연구 인프라 확충,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ㅡ정부가 등록금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법정 인상 한도를 낮췄고 이를 더 낮추는 법안까지 발의돼 있다.

“실질 등록금이 감소된 상태에서 법정 인상 한도를 더 낮추면 대학 현장의 어려움이 더 커진다. 하지만 등록금 문제를 단순히 규제와 자율의 구도로만 접근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등록금을 5% 인상한다면 소비자물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약 0.075% 수준이다. 물가 전반을 흔들 수준은 아니지만 가계에서는 규모가 큰 지출이라 체감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특히 중산층 경계에 있는 가구나 다자녀 가구는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따라서 등록금 인상분이 취약계층에 그대로 전가되지 않게 소득 수준에 따라 장학금과 학자금을 차등 지원하도록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국가장학금과 일반재정 지원 등 국가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ㅡ올해도 상당수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했는데 초반에 일부 대학에선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다.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통해 물가 상승과 고정비 증가, 교육 연구 인프라 투자 필요성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며 이해를 구했다. 결국 학생을 설득한 핵심은 ‘인상분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약속이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등록금 이슈를 대학과 학생 간 갈등 구조로 만들었는데 그럴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 위원회 활동을 위해 다른 대학에 간 적 있는데 화장실에 거미줄이 있고 냄새도 났다. 학생들이 ‘등록금 더 낼게요. 시설 개선해 주세요’ 라고 써놨더라. 한참 전 이야기다. 대학이 학생들과 소통해 등록금을 결정하고, 재정 운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로 환류해야 한다.”

ㅡ궁극적으로 고등교육 재정이 확충돼야 하는데….

“법정 인상 한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등록금이 인상돼도 고정비 상승을 부분적으로 보전하는 수준에 그치고, 미래 투자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가 연장됐지만 일몰은 없어야 한다. 또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마련돼야 한다. 사립 초중고교에도 재정교부금을 주는 건 공공재라서다. 대학도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의 혁신 역량과 직결되는 공공재다.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9%)에 못 미친다. 정부, 국회와 공식 협의 채널을 통해 정부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ㅡ대교협 회장으로서 대학 간 경계를 흐리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이제 대학들이 각자도생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와 사립대, 대형 대학과 중소 대학의 경계를 낮추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도 대학 구분 없이 대형 대학과 중소형 대학 간 컨소시엄 중심으로 운영돼야 지역을 살릴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AI 시설도 서로 개방하고 공유할 수 있다. 대학 기부금도 정치자금 기부금이나 고향사랑 기부제처럼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하는 방안이 논의됐었는데, 지역 소규모 대학은 혜택을 못 받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기부금 중 일정 비율을 공동기금 형태로 조성해 재정 여건이 어려운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

ㅡ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으로 사립대가 소외된다는 우려가 있다.

“소멸하는 지역을 살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단순히 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올린다고 지역이 살 수는 없다. 그 지역 전체가 정주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형성돼야 한다. 지역 내 대학 한 곳만 망해도 지역 경제가 무너진다. 따라서 국립대와 사립대 간 대립 구도로 보면 안 된다. 거점국립대가 앵커 대학이 돼서 주변 중소 사립대와 인프라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하고 학점 교류, 공동학위 등을 진행해야 전체 지역이 살 수 있다.”

ㅡ2027학년도 의대 증원은 모두 비수도권 대학에만 배정됐는데….

“지역 소멸의 원인 중 하나는 의료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는 목표에 동감한다. 지역에서 수련한 의사가 지역에 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 교육은 단순 강의가 아니라 임상 실습까지 포함한다. 숙련된 지도교수, 충분한 병상과 환자 수, 검증된 교육과정이 유기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정원 확대에 맞는 재정 지원은 당연하고, 일부 수도권 의대 부속병원이 지역에서 이미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고 교육비를 지원하면 된다고 본다.”

ㅡAI 시대에 이공계 인재 양성이 중요한데 의대 쏠림이 심각하다

“의대 쏠림의 배경은 미래가 예측 가능한 점과 안정적인 보상에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 연구자, 공학자, 창업가도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성공모델이 확산돼야 한다. 한양대 선양국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수백억 원대의 기술이전 수익을 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결실이 가능하도록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 환경과 장기적 투자도 뒷받침돼야 한다. ‘의대 대신 이공계 가라’는 구호는 의미 없다. 전통적인 이공계 역량 외에 인문사회적 소양이 결합하도록 전공 경계도 허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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