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숫자에 그치지 않고 ‘기회의 사다리’ 될까

  • 동아일보

국회서 대학체제 개편 정책 토론회
고등교육 체제 전환의 시험대 될 것
재정-특성화-채용시장 등이 변수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전책 성공 비결’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차례로 발언하고 있다. 교육의 봄 제공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전책 성공 비결’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차례로 발언하고 있다. 교육의 봄 제공
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교육계 최대 화두다. 수도권 집중과 학벌 중심 사회, 지역 소멸 위기가 동시에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정책은 국가 균형발전과 교육 공공성 회복을 겨냥한 구조 개혁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대만큼 우려도 크고 보완 요구도 적지 않다. 거점 국립대의 지속 가능한 재정, 대학 특성화 전략, 채용시장 구조 개편, 입시와 사교육 구조 개편까지 과제는 복합적이다. 이 정책 성패는 고등교육 체제를 싹 바꾸는 수준의 밑그림 설계와 실행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정책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성공 비결은?’ 토론회에서도 분출됐다. 이날 국회의원과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및 교육 단체 관계자, 대학교수, 정책 연구자 등 참석자들은 이 정책이 단기 재정 지원 사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구조 개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거점 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을 통해 지역 교육력을 높이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국가적 과제”라면서도 “정책 하나로 우리 사회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서울대가 독점한 상징자본의 양적완화… 수평적 특성화 필요”

김영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국립공주대 명예교수)은 “우리 교육은 ‘인서울’이라는 ‘공간의 병목’과, 수능 한 번의 결과가 개인의 지위와 소득, 인생 경로를 좌우하는 ‘시간의 병목’에 가로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대가 독점해 온 상징자본을 지역 거점으로 확산시키는 일종의 경제학적 양적완화 정책”이라며 “핵심 전략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수평적 특성화”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 거점 대학이 지역 산업과 연계된 특유의 경쟁력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면서 “대학 간 차이는 서열이 아니라 ‘창조적 전문성’의 차이로 재편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교육 마스터플랜을 예로 들며 연구 중심 대학, 교육 중심 대학, 개방형 대학이 층위별로 연결되는 3층 구조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편입 사다리를 대폭 확대해 시간의 병목을 해소하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약속해야 한다”면서 대학 간 이동 경로의 제도화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 “속도보다 구조, 구호보다 제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구체성과 안전장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다.

김한나 총신대 사범학부 교직과 교수는 “대학 자체가 아니라 학벌을 매개로 한 사회 구조적 병목에서 고등교육 문제가 비롯된다는 문제 인식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서울대 수준’이라는 목표가 집행 단계 작동 기준으로는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며 “연구 경쟁력, 학부 교육 질, 국제 랭킹, 졸업생 성과 등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정책 설계와 평가 방식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투입 이후 실패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부족하고,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이 동일 권역 사립대와 교원 양성 대학에 미칠 파급 효과 분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속도보다 구조, 구호보다 제도가 중요하다”며 정책은 정밀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학이 아닌 채용 시장이 변해야”

노동시장 구조가 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송인수 재단법인 교육의봄 공동대표는 “채용시장에서 ‘출신학교 등급제’가 유지되는 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의미가 없다”며 “구직자 역량을 대학 이름이 아닌 직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채용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공동대표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사례를 언급하며 “직무 역량을 중심에 두고 채용한 결과 퇴사율 감소 같은 긍정적 성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를 민간 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개혁과 함께 채용 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학벌 완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교육과 대학 입시 구조 또한 정책 성공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거점 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은 의미가 있지만, 재정 지원만으로 대학 서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의문을 해소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지역 고교 상위권 학생들이 거점 국립대 선택을 주저하는 현실은 재정 지원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대학입학보장제와 공동선발 제도, 교육 자원 공유 같은 구조적 대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확대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대학 숫자 아닌 기회의 경로 넓혀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중장기 고등교육 체제 개편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상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국립경국대 교수)은 “이 정책은 대학 서열 완화보다는 지역 불균형 완화 정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도 “대학 간 역할 분담과 특성화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재정 투입 중심의 설계에서 벗어나 질적 전환을 동반한 고등교육 체제 개편 논의로 확장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재정, 입시 제도, 거버넌스, 대학 공공성을 비롯한 대학 체계 전반을 함께 점검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김혜민 사단법인 대전환포럼 운영위원은 “편입 제도 확대와 공공 연구대학 구축, 창업 권장 대학 모델 등 다양한 실행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단순히 대학 수를 늘리는 사업이 아니라 ‘기회의 경로’를 넓히는 구조 개혁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 대학별 수평적 특성화, 편입 사다리 확대, 채용 시장 개편, 초중등 교육 연계, 지역 대학 생태계 재설계 등이 동시에 추진될 때 비로소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체제 개선이라는 맥락 속에서 고등교육과 공교육 개혁을 토대로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대 10개’라는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학생과 청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느냐가 정책의 진짜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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