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구글 스토어 앱이라 믿었는데”…공식 장터 파고든 신종 앱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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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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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앱이라 의심조차 안 했는데 2억을 사기당했습니다.”

울산 북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55)는 지난해 12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공식 장터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설치한 앱 하나로 일상이 무너졌다. 온라인 광고를 통해 알게 된 성인용품 판매 앱이 지옥의 시작이었다. 김 씨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1만 회 이상 설치됐고, 수십 개의 긍정적인 후기가 달린 것을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범죄 조직이 파놓은 정교한 덫이었다. 상품 구매를 위해 1만 7000원을 입금했던 김 씨는 해외 배송 코드 발급 등 명목으로 열흘 동안 35차례에 걸쳐 차량 담보 대출까지 받아 약 2억 원을 송금했다. 뒤늦게 사기를 알아챈 김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울산 북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 정식 앱 외피…수천 명 단체 채팅방과 실시간 상담으로 신뢰 쌓아

최근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 공식 앱 장터를 범죄의 무대로 삼아 거액을 가로채는 ‘신종 앱 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40대 남성 A 씨 역시 같은 앱에서 1만 4000원 상당의 상품을 구매하려다 수수료와 시스템 오류 등을 이유로 추가 금액을 요구받고 8630만 원의 사기 피해를 입어, 지난해 12월 23일 경남 마산중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전형적인 ‘먹튀형’ 사기 범죄지만 가장 큰 특징은 불법 사이트를 활용한 사기 등과 달리 범행 무대가 공식 앱 장터라는 것. 이들은 성인용품 판매를 미끼로 실시간 상담과 수천 명 규모의 단체 대화방을 연동해 이용자에게 ‘검증된 서비스’라는 착각을 심고, 반복 송금을 유도했다.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가스라이팅’도 치밀했다. 이용자가 상품 구매 의사를 밝히면 해외 배송 절차 해결을 위해 수십 개의 택배 계좌에 돈을 쪼개 입금하는 복잡한 절차를 수행하게 한 뒤 “당신의 실수로 다른 고객들의 전체 환급도 막혔다”며 책임을 돌렸다. 이들은 소액의 추가 입금은 바로 환급해 준 뒤 점차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이 ‘공식 장터 앱인데 설마’하며 방심하는 틈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구글 측은 이달 초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 활동을 조장하거나 홍보하는 앱은 허용되지 않으며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앱 삭제와 수익화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히고, 해당 앱을 삭제 조치했다. 하지만 28일 기준 이름만 다르고 동일한 사용자인터페이스에 똑같은 성인용품을 홍보하는 상담원 메시지가 도착하는 구조의 앱이 최소 2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이름만 다른 20개의 유사 앱이 삭제됐다가 등록되기를 반복하며 구글 측 규제를 비웃듯 피하고 있었다.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해당 앱을 설치하자 7036명이 있는 단체 대화방과 함께 일대일 상담원 채팅방이 생성됐다. 단체 대화방에서는 ‘바람잡이’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성인용품 효과를 자랑했고, 상담원은 각종 성인용품과 최음제 등 불법 의약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했다. 음란물 영상과 사진을 구매 독촉 수단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공식 앱 장터에서 설치한 앱이 불법 의약품 홍보와 음란물 유포가 버젓이 이뤄지는 범죄 현장으로 방치된 셈이다.

비슷한 수법의 사기 범죄는 전방위로 확산 중이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해외 유명 금융 회사를 사칭한 가짜 투자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금전을 편취한 사기 조직을 검거하기도 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등이 운영하는 ‘온라인피해365센터’에 접수된 온라인 피해 상담 건수 중 사이버 금융 범죄 관련 상담 건수는 2022년 183건에서 지난해 1014건으로 5배 넘게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앱이나 인터넷 주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수사망을 피하고 사기임을 알아채기 어렵게 해 피해자들이 거액을 쏟아붓게 만드는 구조의 범죄”라고 설명했다.

● 보이스피싱 아니면 계좌 못 막아

피해 회복은 더 어렵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을 가장한 행위’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한다. 보이스피싱과 달리 물건 판매 등을 가장한 사기는 계좌 지급 정지 등을 즉시 신청할 수 없어 골든타임을 놓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엔 이 같은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지난해 3월과 12월 발의됐지만 논의가 멈춰있는 상태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상적인 거래를 가장한 신종 사기로 인한 피해가 커지는 만큼 통신사기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공식 장터에서 설치되는 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자들은 해당 서비스가 검증됐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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