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게 해주겠다며 국내 베테랑 원양어선 선장과 해기사들을 해외 선사에 불법 취업시키고, 이들이 벌어들인 수백억 원대의 임금을 불법 외환거래(일명 ‘환치기’) 수법으로 국내에 반입해 온 일당이 해경에 덜미를 잡혔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선원법 및 금융실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브로커 A 씨 등 2명을 구속 송치하고, 공범 B 씨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또한, 이들을 통해 불법 환치기에 가담한 선원 38명과 범행에 이용된 유령법인 계좌를 대여한 대표 8명 등 총 46명을 각각 입건해 조사 중이다.
해경에 따르면, A 씨 일당은 2020년 11월~올해 5월까지 국내 원양참치어선의 베테랑 선장과 기관장 등 해기사 44명을 모집해 필리핀 해외 선사에 불법 취업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인 선박관리업체로 위장해 당국의 감시를 피했으며, 그 대가로 1인당 연간 5000 달러에서 최대 3만 달러의 소개비를 챙기는 등 총 44만 달러(한화 약 5억 800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연간 소득이 5억~12억 원에 달하는 선장급 해기사들이 국내 세율(최고 45%)에 부담을 느낀다는 점을 악용해 “세금을 내지 않고 돈을 국내로 들여올 수 있다”며 접근했다.
A 씨 일당은 2019년 2월~올해 6월 선원들이 해외에서 받은 급여를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유령법인의 대포통장을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미화 1만 달러 이하로 금액을 나누어 송금하는 이른바 ‘쪼개기’ 수법을 동원했다.
해경 조사 결과, 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국내에 불법 반입한 자금 규모는 약 370억 원에 달하며, 이에 따른 탈세액만 약 150억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일부 자금은 필리핀 현지 불법 환전업자를 통해 유령법인 계좌로 세탁돼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범행으로 인한 ‘국부 유출’이다. 해외로 빠져나간 선원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어장 정보, 해류 분석, 어군 탐지 등 국내 원양산업의 핵심 노하우를 보유한 A급 인력들이다.
해경 관계자는 “핵심 조업 기술이 경쟁국으로 넘어가면서 국내 원양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하고 수출 실적 악화까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경은 2018년부터 A 씨 일당을 통해 해외로 유출된 선원이 약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남해해경청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대만, 중국 등으로도 베테랑 해기사들이 팀 단위로 이탈(일명 ‘패키지 유출’)하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해외 소득 밀반입에 동원된 1조 원대 규모의 유령법인 대포계좌 운영 조직에 대해서도 추적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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