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IRM]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사무실 압수수색 시 정보 유출 돼… 비밀유지권 도입위해 국회와 소통
불량 로펌 사후 제재 강화 필요해… 형사 사건 성공보수 부활 추진도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소수의 ‘불량 로펌’ 때문에 전체 변호사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상습적인 불량 로펌을 지정해 내년 중 명단을 공개할 것이다.”
조순열 서울변회 회장(53·사법연수원 33기)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불량 로펌 문제를 강조하며 이처럼 말했다. 불량 로펌은 제대로 된 업무를 하지 않고 약정을 이유로 변호사 선임비를 돌려주지 않는 등 의뢰인을 기만하는 로펌을 말한다. 최근 관련 제보와 민원이 쏟아지며 법조계 전반에 걸쳐 문제가 되고 있다.
상습 불량 로펌에 대한 명단 공개를 꺼내든 건 지방변호사회 중 서울변회가 처음이다. 조 회장 임기 시작 이후 ‘형사 성공보수 부활’ 등 직역 수호 현안에 대응하고 있는 서울변회가 변호사 신뢰 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로 대한변협 초대 청년부협회장, 제96대 서울변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올 1월 제98대 서울변회 회장에 당선돼 2년간의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조 회장을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기 반환점을 맞는 소회는.
“참담하다. 기본 생계마저 무너질 만큼 어려움을 겪는 청년 변호사 숫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직업적 자긍심을 갖고 공익과 사명감을 지키고 사회의 하방을 떠받쳐야 할 주역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이런 역할을 요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후배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다. 그것이 솔직한 소회다.”
―성과도 있었다. 변호사 비밀 유지권 도입 관련 논의에 진전이 있었는데.
“변호사 비밀유지권(ACP)은 변호사와 의뢰인이 나눈 정보를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을 권리다. 한국에서는 수사기관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의뢰인과 상담한 내용, 각종 통신정보를 빼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직접 국회를 방문해 제도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득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국회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힘을 보탤 계획이다.”
―해외 사례는 어떤가.
“비밀유지권은 선진국은 물론 사법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도 일부 갖추고 있는 제도다. 당연하다. 변호사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방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그걸 믿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런 변호사가 정리해 둔 자료를 가져가 증거자료로 쓰는 것은 당사자 대등주의 원칙에 철저히 반한다. 변호인 조력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해외 변호사 단체와 교류하다 보면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 비밀유지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국제 법률 사건 수임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지방 변호사회 중에서는 처음으로 불량 로펌 명단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배경은.
“전관 출신 변호사가 변론해 줄 것처럼 약정했는데 기대했던 변호사가 안 나온다거나 약정 후에 사무 착수하지 않고도 3일이 지났다며 선임비를 돌려주지 않는 등 의뢰인의 신뢰를 배반하는 로펌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변회에 징계 민원이 대량 접수된 상태고 한국소비자원에도 비슷한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문제는 사후 제재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과태료는 최대 3000만 원으로 매출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불량 로펌 대표가 정직 처분을 받아도 막후에서 로펌을 운영하다 1∼2개월 후에 돌아온다. 물론 사후 제재 강화를 위한 법안도 발의돼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일반 국민에게 불량 로펌 명단과 이들의 극단적인 선임 행태를 사전에 알리는 것이다. 심사 과정에 외부 위원을 참가시키는 등 충분한 절차를 거쳐 내년 중 공개할 생각이다.”
―내부에서 반대 의견도 많았을 텐데.
“용기를 냈다. 무엇보다 의뢰인의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조력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되레 변호사에게 당하는 꼴이다. 땀 흘려 일하고 원칙과 윤리를 지키며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회원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회원이라도 변호사 전체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불량 로펌이라면 방치는 직무 유기다.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변회 집행부 중에선 처음으로 경찰서, 구청까지 방문하고 있다. 이유는.
“변호사들이 활동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방문하자는 취지다. 서울 31개 경찰서를 비롯해 25개 구청, 소방청, 구치소와 교도소를 담당하는 교정청까지 기관방문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변호사들이 재판에 들어가거나 검찰 수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변회의 기관방문도 법원, 검찰에 집중돼 있었다. 지금은 변호사들의 경찰 수사 참여가 일상화됐다. 당사자들은 어느 기관에서든 항상 변호사를 대동하고 조사받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현장에선 아직 변호인 조력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경우가 있다. 변호인이 수사기관 등과 함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동반자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기관의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남은 임기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단 하나를 이뤄내야 한다면 형사 성공보수 부활이다. 10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건 노력 없이 법관·검사 시절 인연을 이용하며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아 가는 일부 전관의 사례였다. 전관 문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문제는 이 때문에 청년 변호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변호사가 보수를 받지 않거나 착수금을 최소화해 사건을 수임하고 경과에 따라 비용을 받는다. 의뢰인도 그걸 원한다. 정작 승소로 이어진 후에 성공보수약정 무효를 이유로 약속한 금액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들이 최소한의 보수조차 받기 어려운 이런 상황에선 무엇보다 돈이 없는 형사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변론을 받기 어려워진다. 입법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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