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통도 없이… 펌프-갈퀴 들고 산불 진화 투입된 민간 대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5일 03시 00분


[동시다발 산불]
산청 산불로 본 열악한 실태
안전모-방화복-마스크 등만 지급… 대형 불길 번져 화염 고립때 취약
“공기호흡기-산악용 차량 지원돼야… 상당수 고령, 젊은 대원 늘려야”

안동 산에도 시뻘건 불길
24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야산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29km 넘게 확산해 이날 안동까지 번진 탓에 피해 면적도 8490ha로 커졌다. 안동=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동 산에도 시뻘건 불길 24일 오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야산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29km 넘게 확산해 이날 안동까지 번진 탓에 피해 면적도 8490ha로 커졌다. 안동=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2일 영남 산불로 숨진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은 갑작스럽게 불어온 역풍을 타고 주변을 포위한 불길에 갇혀 숨졌다. 같은 지점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진 진화대원들도 2도 이상의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이들이 갖춘 장비는 갈퀴, 등짐펌프, 방화복 등 열악한 수준이었다. 불길을 피하거나 막는 데 사용할 소방용 특수장비가 있었다면 참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장비 열악… 전문가들 “산소통-특화 차량 필요”

현재 우리나라 산불 대응 인력으로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와 공중진화대, 그리고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관할하는 산불전문예방진화대가 있다. 특수진화대와 공중진화대는 전문 지식을 갖춘 산불 대응 특수 인력으로, 헬기 등 소방 장비를 동원해 현장에 투입된다. 반면 예방진화대는 해당 지역 민간인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평시에 산불 예방 활동을 하다가 불이 나면 잔불 정리, 뒷불 감시 등을 담당한다. 현재 인력 규모를 보면 특수진화대 435명, 공중진화대 104명, 예방진화대 9604명이다.

예방진화대는 산불 대응 인력 중 규모가 가장 크며 대부분 사건을 가장 먼저 접하고 대응에 나선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는 대형 화재를 감당하기에 부족한 실정이다. 산림청 산불관리통합규정이 진화대원에게 지급할 것으로 규정한 안전 장비는 방화용 장갑, 안전모 및 안전화, 손전등, 방화복, 방연마스크, 방염텐트, 개인 구급약품 등이 전부다. 등짐펌프와 잔불 정리용 갈퀴 등도 지급되지만, 이들에게 편성된 장비 예산은 1인당 40만 원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장비로는 산불에 고립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우며 휴대용 공기호흡기(산소통)나 산악 특화 차량, 전면마스크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진압 시 화염 속에 고립된 경우 휴대용 공기호흡기나 산악 특화 차량 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성용 안동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진화대원 등에겐 방진마스크가 지급되는데 화재 고립 시 호흡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플라스틱 소재 전면 마스크를 지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대부분 동네 고령 주민들… “전문 교육-훈련”

목숨을 잃은 진화대원 3명은 지난해 경남 창녕군이 선발한 기간제 진화대원으로, 모두 창녕군 군민이었다. 숨진 이모 씨(64)의 유가족은 “형님은 평범하게 농사를 지었던 분”이라며 “왜 화재 전방까지 갔다가 변을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진화대원은 농촌에서 평소 농사를 짓다가 산불이 잦은 봄이나 겨울에 화재 예방 임무에 투입된다. 일당이 8만 원 남짓이다 보니 주로 퇴직한 고령층이 지원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진화대원 9604명 중 6696명(69.7%)이 60대 이상이었다.

전문가들은 산불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화를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 대표는 “진화대원 중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은 10%에 불과하다”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30, 40대의 비교적 젊은 진화대원들을 선발해 전문 교육을 시킨다”고 말했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방진화대가 지자체 소속으로 분류돼 있지만 교육과 훈련, 채용 과정 진행은 소방청이나 산림청 등 유관기관이 직접 맡아야 한다”며 “최소한의 작전수행 능력은 갖출 수 있게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불#진화대원#예방진화대#공기호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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