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콜라병 뚜껑 따주는 사이”…9년만에 박사학위 장애 제자와 스승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9일 17시 37분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최성규 교수(왼쪽)와 유장군 학생. 대구대 제공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최성규 교수(왼쪽)와 유장군 학생. 대구대 제공
뇌성마비로 신체적 움직임과 일상 대화조차 어려운 중증장애 학생이 대학에서 9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의 곁에는 경제적 지원을 비롯해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준 지도교수가 있었다.

19일 대구대학교에 따르면 이 대학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언어청각장애아교육 전공 유장군 씨(27)는 오는 21일 열리는 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문학 박사학위는 물론 우수연구상과 총동창회장상을 받는다.

유장군 학생. 대구대 제공
유장군 학생. 대구대 제공
중증장애(심한 지체 및 뇌병변 장애)가 있는 유 씨는 2016년 이 대학 초등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던 유 씨를 최성규 교수(65)는 세심히 보살폈다.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지내던 유 씨가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입학금 300만 원이 없어 고민할 때도 최 교수는 선뜻 입학금을 내줬다. 최 교수는 20여 년의 교수 생활 동안 유 씨뿐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총 76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학사 시절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9년간 최 교수와 동고동락했다. ‘콜라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콜라를 좋아하지만 혼자 병뚜껑을 따지 못하는 유 씨를 위해 최 교수는 항상 옆에서 병뚜껑을 따줬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던 적도 있다. 최 교수는 학부 4학년이 된 유 씨에게 교원 임용시험 준비를 권했다. 본인도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공부했기에 유 씨가 교사가 된 후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미래를 준비하길 바랐다. 하지만 제자의 대학원 진학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다.

유 씨가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최 교수는 ‘지체장애’ 분야 공부를 권했지만, 유 씨는 ‘청각장애’ 분야를 공부한 최 교수에게 배우는 것을 선택했다. 학업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던 유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수업의 경우 청강을 포함해 7번이나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유 씨는)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서도 절대 뒤처지는 법이 없었고, 오히려 더 저를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열정으로 유 씨는 박사 과정 재학 기간 7편의 논문을 단독 또는 제1저자로 게재했다. 이 가운데 2편은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은사인 최 교수와는 ‘장애인 교원의 교직 입문 전과 후의 교직 발달에 대한 질적연구’ 논문을 공동 집필했다.

최성규 교수. 대구대 제공
최성규 교수. 대구대 제공
향후 유 씨는 최 교수의 예전 조언대로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최 교수님과 같은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최 교수도 제자의 졸업에 맞춰 이달 말 퇴임한다. 그는 대학 강단을 떠나 청각장애인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할 예정이다.

#중증장애#은사#박사학위#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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