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단순 시비로 종결한 이후 신고자가 사망하면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 이에 불복했지만, 징계는 정당한 처분이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경찰관 A 씨가 지난달 경기도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불문경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A 씨는 2021년 8월 ‘동거남과 시비가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고 총 3차례 현장에 출동했다. 해당 가정은 과거 3년간 가정폭력 우려 가정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고위험군이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한 뒤 폭행 여부를 물었는데, 남성은 폭행을 부인했고, 여성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거지 점검 결과, 기물 파손 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경찰은 가해자를 주거지 밖 외부에 둔 채 복귀하면서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최초 신고 당시 담당 경찰이 112시스템에 ‘시비’로 입력한 사건 코드도 그대로 유지했다.
가족폭력 대응 업무매뉴얼에 따르면 가족 간 단순 다툼·언쟁도 ‘가정폭력’ 코드를 입력해야 하고, 관계자 진술과 별도로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해야 하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두 차례 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A 씨는 근무 교대를 했고, 이후 피해자의 추가 신고를 받은 경찰도 가해자에게 범칙금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피해자는 총 14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했지만, 결국 방범 철조망을 뜯어내고 주거지에 들어간 동거남에게 여러 차례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지역 경찰서장은 직무태만에 따른 공무원법상 성실의무 위반으로 A 씨에게 견책 처분 징계를 내렸다. 가족 간 시비를 인지했음에도 조사가 불충분했고 사건 코드도 정정하지 않아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 씨는 이에 불복해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고, 소청심사위는 2022년 4월 징계 처분을 견책에서 불문경고로 변경했다. 하지만 A 씨는 불문경고 처분마저도 취소를 요구하며 경기도북부경찰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불문경고는 법상 징계처분은 아니지만 표창 대상자 제외 등 불이익을 받는다.
A 씨는 재판에서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신고자와 동거남이 가정구성원 사이인지 여부를 알 수 없었고, 가정폭력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만한 특별한 정황이 없어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하지 않고 112시스템 신고 종별코드를 변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정폭력 피해를 인지할 수 없었고, 미흡한 후속 조치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 원고는 신고자의 주거지에서 당시 상황에서 고려될 수 있는 가정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강구했다. 단지 원고가 위험성 조사표를 작성해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않았다거나 112시스템 신고 종별코드를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유만으로 직무를 태만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징계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고는 관계지침에 따라 현장출동 당시 가정구성원 간의 다툼, 언쟁이 있었음을 인지한 이상 언제든지 가정폭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음을 예상해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 이 사건 처분의 징계사유는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징계 사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원고는 세 차례의 현장출동을 통해 신고내용의 실질이 가정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고 신고자와 동거남의 다툼이 가정폭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가정폭력범죄의 재발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여타 고려요소에 대한 조사 및 평가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는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강구하는 데에도 소홀하였고, 112시스템상의 사건종별 코드를 ‘가정폭력’으로 변경하지 않아 원고가 속한 순찰1팀과 근무교대를 한 순찰2팀으로 하여금 이 사건에 대해 가정폭력 사건임을 전제로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원고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서 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이 사건 처분의 징계사유가 존재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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