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녹음한 남편과 통화, ‘돈 선거’ 증거로…대법, 유죄 확정

  • 뉴시스
  • 입력 2024년 1월 8일 0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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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당사자 위법 녹음은 사생활 침해 미비"

개인간 통화 당사자가 위법하게 녹음한 내용도 사생활 침해가 중대하지 않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공단체등위탁선거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원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전화통화 녹음파일 중 A씨와 그의 배우자 사이의 전화통화 부분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심의 판단에 위법수집증거,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선거운동에 나섰던 A씨와 B씨, 또 조합장선거 후보로 나선 C씨는 함께 공모해 금품을 제공하고,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등 공공단체등위탁선거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A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A씨가 B, C씨와 통화한 녹음파일, A씨가 본인의 배우자와 통화한 녹음파일 등을 다수 발견해 증거로 제출했다.

다만 해당 녹음파일은 A씨의 배우자가 불륜 등을 의심해 A씨 휴대전화에서 몰래 자동녹음기능을 활성화했고, 이로 인해 녹음된 파일이었다.

1심에서는 선거운동원인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선거 후보자였던 C씨에게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 따라 ‘불법감청에 의한 전기통신내용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건 녹음파일은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의 증명을 염두에 두고 생성된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 역시 해당 녹음파일의 생성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은 채 적법하게 압수한 휴대전화를 분석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며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한다고 해서 통화 당사자들에 대한 사생활의 본질적인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심에서도 A씨와 B씨의 항소는 기각됐다. C씨는 일부 무죄가 선고됐지만, 형량은 징역 1년4개월로 늘었다.

재판부는 A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전화통화 녹음파일 중 A씨와 다른 피고인들 사이의 통화 녹음파일 부분은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쌍방 상고로 진행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모든 상고를 기각했다.

검사는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원심에 대해 상고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원심은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일부 증거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도 A씨에 대한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아 유죄로 판단했다”며 “(검사 상고는) 원심판결의 주문이 아니라, 이유만을 다투기 위한 것임이 명백해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피고인들은 A씨와 배우자 사이의 통화녹음이 사인에 의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와 배우자는 전화통화의 일방 당사자이고, 둘이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발언 내용을 직접 청취했기 때문에 A씨의 사생활 비밀, 통신의 비밀, 대화의 비밀 등이 침해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들은 ‘돈 선거’를 조장하는 중대범죄에 해당한다. 선거범죄는 대체로 계획적·조직적인 공모 아래 은밀하게 이루어지므로 피고인들의 공모관계를 비롯한 구체적 범행 내용 등을 밝혀 줄 수 있는 객관적 증거인 전화통화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인이 수집한 사생활 영역 관련 증거의 증거능력 판단기준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재확인했다”며 “전화통화 일방당사자의 통화녹음파일 증거능력이 문제된 사건에서 증거능력이 부정되지는 않더라도 그 녹음 경위, 녹음 내용 등에 비추어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는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이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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