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 가격… ‘실험실 다이아’ 찾는 신혼부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3일 01시 40분


코멘트

[위클리 리포트] 주얼리 시장서 떠오르는 ‘랩그론 다이아몬드’
실험실에서 탄생한 다이아몬드
천연과 성분-품질 같지만 저렴
환경오염-노동력 착취 걱정도 無

《실험실서 만든 ‘랩그론 다이아몬드’ 예물로 인기

사람이 실험실에서 제작한 ‘랩그론(Lab-Grown) 다이아몬드’가 화제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은 100% 동일한데 가격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가성비’ 예물을 구하는 예비 부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어때요? 눈으로 봐도 다를 게 없고, 가격도 훨씬 저렴한 걸요.”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김모 씨(30)는 최근 웨딩 반지를 인조 다이아몬드인 ‘랩그론 다이아몬드’로 구매했다. 가격이 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 수준인데 외관상 차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반지를 저렴하게 사서 아낀 돈으로 혼수나 다른 예물을 더 살 수 있게 됐다”며 “가성비를 따지는 커플이라면 선택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KDT 다이아몬드의 ‘랩그론 다이아몬드’ 실험실에서 인공 다이아몬드가 판매에 앞서 가공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KDT 다이아몬드의 ‘랩그론 다이아몬드’ 실험실에서 인공 다이아몬드가 판매에 앞서 가공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자연에서 발굴된 천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람이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인조 다이아몬드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비교할 때 가격이 5분의 1∼10분의 1 수준이다.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조건과 비슷한 조건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만들어진다. 고압·고온(HPHT) 방식, 화학기상증착법(CVD) 등을 활용해 실험실에서 2∼4주에 걸쳐 다이아몬드 시드(씨앗)에 탄소를 조금씩 붙여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개의 다이아몬드 시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수십 개의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 화학적, 물리적, 광학적으로 자연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와 100% 동일해 보석 감정사 역시 특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선 구별할 수 없다. 정태주 국립안동대 전기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길러서 만드는 다이아몬드라는 점이 특이할 뿐 랩그론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는 성분상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 ‘블러드 다이아몬드’ 논란에서 자유로워

KDT 다이아몬드 실험실에 놓인 CVD리액터의 체임버에서 원석이 자라나고 있다.
KDT 다이아몬드 실험실에 놓인 CVD리액터의 체임버에서 원석이 자라나고 있다.
과거에도 인조 다이아몬드는 있었지만 ‘가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 막대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려면 3∼4km 깊이로 땅을 파헤쳐야 하고 흙을 씻어내기 위해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1캐럿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는 데 500L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반면 같은 양의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만들 때는 기계 장치를 식히기 위해 물 18.5L만 필요하다.

아프리카 등 분쟁 지역에서 현지인을 착취하며 채취한 이른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내전 자금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러시아산 천연 다이아몬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국제사회에서 수입 금지 움직임이 일고 있기도 하다.

최근 제작 기술의 발달도 랩그론 다이아몬드 인기에 한몫했다. 인조 다이아몬드는 1954년 GE가 개발에 성공해 공업용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천연 다이아몬드 색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인조 다이아몬드를 천연 다이아몬드와 동일한 수준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랩그론 다이아몬드’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불게 됐다.

국내에선 2021년 말 KDT 다이아몬드가 랩그론 다이아몬드 제작에 성공했다. 보석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었고,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생산할 수 있는 실험실이나 연구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도입 시기가 늦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 예비부부 “랩그론이 더 낫다”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보급은 국내 혼수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화제라고 한다. 최근 온라인 웨딩 카페에서 ‘0.5캐럿 천연 다이아몬드와 1캐럿 랩그론 다이아몬드 중 어떤 걸 선택하겠나’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절반 이상(52%) 랩그론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최근 결혼한 이모 씨(29)는 “1500만 원이면 1캐럿 천연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살 수 있는데, 랩그론으로는 반지와 귀걸이 등 풀세트를 살 수 있다”며 “가성비가 좋아서 랩그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내년 봄 결혼 예정인 최모 씨(28)는 “천연 다이아몬드 중에선 오염된 것도 있는데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은 순도 100%여서 더 낫다고 본다”고 했다.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취급하는 주얼리 업체도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얼리 상가에선 최근 3개월 사이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취급하는 매장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랩그론 다이아몬드 전문 매장을 운영하는 김봉래 대표는 “요즘은 손님들이 소개를 안 해도 먼저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구매할 수 있냐고 묻는다”며 “주위 보석상들에서도 랩그론을 취급하고 싶다는 문의가 자주 온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업계 역시 발 빠르게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랜드그룹, 로이드 등 주얼리를 취급하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백화점, 이커머스 업체 등도 랩그론 다이아몬드 판매를 시작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달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랩그론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 ‘더그레이스 런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스토어를 열기 전) 2000만 원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도 못 한 높은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국내 주얼리 브랜드 로이드 역시 지난달 15일 100만 원에 1캐럿 랩그론 다이아몬드 반지를 출시한 이후 3주 만에 약 1000개를 판매했다.

롯데백화점은 동탄점 행사 이후 본점 퍼스널 쇼핑룸에 랩그론 다이아몬드 매장을 열었다. 올 5월 25일 노원점에 첫 랩그론 다이아몬드 정식 매장을 연 데 이어 추가로 매장을 확보한 것이다. 박성용 롯데백화점 패션액세서리 치프바이어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관련 상품과 콘텐츠를 계속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천연 다이아몬드 언젠가 대체할 것”

다이아몬드 연마사가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면을 다듬고 있다.
다이아몬드 연마사가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면을 다듬고 있다.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선풍적 인기에 해외에선 천연 다이아몬드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실제로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전 세계 천연 다이아몬드 생산의 약 90%를 독점하는 드비어스그룹은 올 7월 결혼반지에 주로 쓰이는 원석 ‘셀렉트 메이커블’ 다이아몬드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이 제품은 지난해 6월 1400달러(약 186만 원)에 거래됐으나 1년 만에 850달러(약 113만 원)로 40% 가까이 떨어졌다.

다이아몬드 시장조사업체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전 세계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2016년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에 못 미쳤으나 2030년까지 약 499억 달러(약 66조400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럭셔리 브랜드들까지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루이비통 등을 보유한 LVMH는 올 7월 이스라엘의 랩그론 다이아몬드 스타트업 ‘루식스’에 투자했다. LVMH 산하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는 올해 초 랩그론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까레라 플라스마’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랩그론(Lab-Grown) 다이아몬드
자연에서 발굴된 천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람이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인조 다이아몬드. 화학적, 물리적, 광학적으로 자연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와 100% 동일하다.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10분의 1 수준이다.


1캐럿 만드는 데 17일… “연간 3만5000캐럿 생산 목표”


랩그론 다이아몬드 만드는 실험실 방문해보니
랩그론 다이아몬드 업체 KDT
2021년 국내 첫 생산 성공
기계 내부 온도는 1000도 이상
“랩그론 다이아몬드 1캐럿을 만드는 데 400시간(17일)이면 됩니다.”

보석업체 KDT 다이아몬드의 강성혁 실장은 20일 기자에게 실험실에서 만든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KDT는 2021년 말 서울시립대 신소재공학과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국내 최초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 등이 100% 동일한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에선 8번째였다.

이날 찾은 서울 종로구의 KDT 다이아몬드 실험실에는 인도 출신의 다이아몬드 연마사 3명이 다이아몬드를 다듬고 있었다. 연마사들은 실험실에서 나온 다이아몬드 원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디자인한 후 레이저 가공 작업을 하며 면을 다듬는 역할을 한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적게는 수억 년, 많게는 10억 년 이상 열과 압력을 견디며 생성된다. 하지만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인공 조건에서 단기간에 생산된다. 이곳 실험실에선 매일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3, 4개가 탄생된다. 강 실장은 “쉽게 말해 천연 다이아몬드가 고드름이라면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냉장고의 각얼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물이 얼어 생긴 얼음이란 점에선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다.

KDT 다이아몬드는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만들 때 ‘화학기상증착법(CVD)’을 활용한다. 기계 안에 다이아몬드 시드(씨앗)를 넣은 뒤 메탄과 질소를 투입하고 내부 온도를 1000도 이상으로 높여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름 1mm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만드는 데 약 100시간이 걸린다. 1캐럿(약 4mm)의 경우 2주 반 만에 만들 수 있다.

KDT 다이아몬드는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년에 약 1200캐럿을 생산하는데 조만간 생산량을 3만5000캐럿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강 실장은 “회사 방문객 80% 이상이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러 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며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채굴 및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인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갈수록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 가격#실험실 다이아#신혼부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