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에 차만 지나가도 가슴 ‘덜컹’” 태풍 속 달리는 배달기사,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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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8월 11일 1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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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강남구의 먹자골목 인근. 배달 오토바이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 뉴스1
11일 서울 강남구의 먹자골목 인근. 배달 오토바이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 뉴스1
“비바람으로 오토바이가 휘청거리면 철렁해요. 그래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죠.”

10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인근 먹자골목. 평소라면 저녁 시간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거릴 시간이지만 거센 비바람이 예보되면서 거리는 한산했다. 온몸을 덮는 우비를 쓰고 한 손엔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든 배달원들만 바삐 도로 위를 오갈 뿐이었다.

배달업 종사 2년 차인 김모씨(34)도 마찬가지다. 핸드폰 픽업 알람을 보며 서둘러 오토바이에 올라탄 그는 “돌풍이 몰아치면 주행 차선이 바뀐 적도 있어 안전이 걱정된다”면서도 “비가 오면 주문이 늘고 단가도 2배 정도 뛰어 일을 쉴 순 없다”고 말했다.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폭우와 돌풍이 예고됐지만 배달기사들은 평소보다 분주하게 거리를 오갔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미끄러운 도로와 강한 바람 때문에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하루 배달 건수 확보가 중요한 배달업 특성상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먹자골목 인근에서 2시간 가까이 거리를 지켜본 결과, 10분당 4~5대의 오토바이가 음식을 싣고 빠른 속도로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기준 서울에 인접한 ‘카눈’ 최대 풍속은 초속 20m를 기록했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을 시 휘청거릴 정도의 풍속이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배달기사들은 헬멧을 쓰고 온몸을 덮는 우비를 착용했다. 평소보다 늘어난 콜 수와 높아진 배달 단가에 어쩔 수 없이 거리에 나서는 상황에서 이들은 감속 등 개별적 조치로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던 셈이다.

인근 카페에서 포장된 빙수를 들고 서둘러 걸어가던 배달기사 이모씨(30)는 “평소에는 시속 50~60㎞정도로 속도를 내지만 오늘은 절반가량인 시속 30~40㎞로 운전 중”이라며 “도로가 미끄러워 평소보다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반 물품을 기다리던 또다른 배달기사 김모씨(49)역시 “어떻게 오토바이가 휘청거릴지 모르니 바람이 불면 옆에 차가 지나가는 것도 무섭다”면서 “아무리 안전 조치를 취해봤자 태풍이 오면 끝이다. 비바람이 좀 더 거세지면 일을 포기하고 집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5시 한 배달 앱 화면. 태풍 예보로 인한 배달 중지 안내가 공지돼 있다.ⓒ 뉴스1
11일 오후 5시 한 배달 앱 화면. 태풍 예보로 인한 배달 중지 안내가 공지돼 있다.ⓒ 뉴스1
비오는 날 배달기사들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배달의민족을 비롯한 주요 배달플랫폼 업체들은 개별 기사들에게 문자로 보호장비 착용 권고 등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일부 지역에선 서비스 제공 중단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5시쯤 배달앱을 열어보니 태풍 ‘카눈’ 최접근이 예고됐던 일부 지역에선 배달 서비스가 일시 중단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같은 서울이라고 해도 어떤 지역엔 배달이 허용되는 등 기상 상황 변동 가능성이 큰 만큼 이같은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10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동조합(노조)은 태풍 ‘카눈’ 상륙시 배달기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사측이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중대한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사측이 나서서 배달앱을 중단하는 등의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태풍 등으로 인한 위험이 예상될 경우 사측이 배달앱을 중단하고 그 시간만큼 소속 라이더에 보상하거나, 고용보험에 가입된 플랫폼 노동자에게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하는 등의 배달기사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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