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킨텍스 내 연기 자욱… “유사담배는 단속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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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제는 OUT!]
전자담배 박람회장 가보니
“편하게 피워보세요” 샘플 권유… 인근 박람회장도 간접흡연 노출
현행법상 ‘연초의 잎’만 담배 규정… 유사담배 제재할 방법 없어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자담배 박람회 ‘코리아베이프쇼 2023’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현행법상
 킨텍스는 금연구역이지만 이날 전시장 곳곳에는 전자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자담배 박람회 ‘코리아베이프쇼 2023’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현행법상 킨텍스는 금연구역이지만 이날 전시장 곳곳에는 전자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편하게 시연해보세요.”

23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7B홀. 전자담배 박람회 ‘코리아베이프쇼 2023’이 열리는 이곳에선 곳곳에서 희뿌연 전자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자가 한 부스에 들어서자 직원은 액상형 전자담배 샘플을 피워보라고 권했다. 입을 갖다 대는 부분에 갈아 끼울 수 있는 일회용 고무와 소독을 위한 알코올 패드도 준비돼 있었다.

전시기획사인 ‘THE FAIRS’와 한국전자담배진흥원 주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구역(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인 킨텍스에서 실내 흡연이 이뤄질 것을 우려해 행사를 열지 말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주최 측에 보냈지만, 박람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그 결과 우려대로 실내흡연과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장 곳곳에 붙은 ‘시연 금지’ ‘흡연 금지’ 안내문이 무색했다.

● 간접흡연 위험 그대로 노출


전시장에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있었다. 부스와 부스 사이 통로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단속을 하던 일산서구보건소 직원에게 적발됐다. 보건소 직원이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하자 이 남성은 “몰랐다. 지금 다들 피우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기자가 전시장에 머문 지 1시간가량이 지나면서부터 목이 칼칼하고 따갑기 시작했다. 전시장은 입장문이 열려 있었다. 그 너머에는 다른 박람회를 찾은 어린이,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이들 모두 간접흡연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람회에서의 호객 행위도 치열했다. 주최 측이 일본 성인물(AV) 여배우의 팬미팅을 열어 순간 30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업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글을 올리거나 게임에서 이기면 전자담배 제품을 무료로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논란이 커지자 킨텍스 측은 ‘내년부터는 전자담배 박람회를 킨텍스에서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고양시, KOTRA의 출자로 이루어진 전시장에서 정부의 금연 정책에 역행하는 내용의 행사가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각종 규제 피해 가는 ‘유사 담배’


이번 박람회에서 나타난 실내흡연 등의 문제를 제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법상 담배의 정의가 협소한 탓이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서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다. 즉, 연초의 ‘잎’을 원료로 만들어진 제품만 담배에 해당한다.

그 외에 담배의 기능을 하지만,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제품들을 통칭해 ‘유사 담배’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연초의 줄기나 뿌리, 화학물질을 이용한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고 ‘유사 담배’일 뿐이다.

이 때문에 유사 담배는 담뱃갑 경고 그림과 문구 표시, 광고 제한 등 정부의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대부분의 업체는 자신들의 제품이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연구역에서 피워도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담배의 정의를 확대해 이러한 유사 담배가 정부의 규제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에 연초의 줄기나 뿌리, 니코틴으로 만든 유사 담배도 담배로 포함시키자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고양=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금연구역#유사담배는 단속 못해#전자담배 박람회#코리아베이프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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