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잘난 韓, 못난 尹, 이상한 張

  • 동아일보

정치 초보들의 자존심 싸움에
여당만 ‘야당복’ 누리는 중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
승자 없이 보수 공멸할 것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없는 집구석보다 있는 집안 싸움이 시끄러운 법이다. 걸려 있는 게 많아서다. 그런데 입법과 행정 권력을 모두 쥔 거대 여당의 내전보다 법안 하나 통과시킬 힘도 없는 국민의힘 집안싸움이 더 요란하다. 누구 하나는 진짜 죽어 나갈 것 같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내전은 ‘명청 대전’이라 부른다. 국힘의 내전은 ‘장한 전쟁’이자 ‘윤한 전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66), 한동훈 전 대표(53), 장동혁 현 대표(57) 사이에서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난투극은 보물 지도를 놓고 서로 총질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캐릭터에 맞게 고쳐 부른다면 ‘잘난 놈, 못난 놈, 이상한 놈’ 정도가 되겠다.

먼저 ‘못난 놈’ 윤석열이다. 자폭 계엄으로도 모자라 그 책임을 죄다 아랫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마지막 구명줄인 훗날 사면을 위한 동정 여론 조성도 못 하는 못난 사람이다. ‘잘난 놈’은 한동훈이다. 수사면 수사, 말싸움이면 말싸움, 훈훈한 외모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품을 줄 모르는 성품이다. 교수라면 한동훈에게 A학점은 줘도 딸은 주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놈’은 장동혁이다. 온건 보수인 줄 알았는데 국힘의 극우화를 선동하고 여당 독주를 막겠다면서 여당 좋은 일만 시키는, 못난 듯 이상한 사람이다.

원래 한동훈은 윤석열에게 의리남이었다. 윤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후 한만 같이 산책하고 케이크 나눠 먹으며 윤을 챙겼다고 한다. 윤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정치를 하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 사람도 한이었다(‘실록 윤석열 시대’). 윤은 대통령이 된 후 한을 법무부 장관에 깜짝 발탁해 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까지 몰아주며 2인자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윤에게 한은 “총으로 쏴서라도” 없애고 싶은 죽일 놈이 됐다. 각별했던 사이일수록 한번 틀어지면 끝도 없이 어긋나는 법이다.

윤과 한이 계엄과 탄핵으로 실권한 틈을 타 당권을 잡은 이가 장동혁인데 그를 발탁한 사람이 한이다. 한은 비대위원장 시절 3선 이상이 맡던 사무총장 자리에 보궐선거로 배지를 단 0.5선 장을 앉히면서 그의 정치적 체급을 높여줬다. 둘은 윤의 탄핵에 관한 견해차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은 한더러 “윤의 배신자”라 하고, 친한계는 장을 “한의 배신자”라 한다. 장의 윤리위원회가 ‘당원 게시판’ 문제로 한을 제명하자 여당 의원은 이런 촌평을 남겼다. “윤석열의 사형 구형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한동훈이 죽어 있었다.”

셋은 어쩌다 깐부에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걸까. 정책이나 정치적 노선에 관한 견해차로는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게 패지 않는다. 내란 특검에 따르면 윤은 한의 후임인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 수사는 불법임에도 사악한 한동훈이 2년째 끌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친윤계는 “윤이 한을 업어 키우다시피 했는데 배은망덕하다”고 하고, 한은 “개똥 같은 소리”라고 한다. 장과 한의 결별엔 한의 페북 게시글이 결정적이었다. 장이 당 대표 선거에 나가자 한은 “최악(장동혁)을 피하게 해달라”며 김문수 편을 들었다. 요즘 양쪽 진영은 “한동훈은 면장도 못할 사람” “장동혁은 내 스태프였다”는 말을 놓고 입씨름 중이다. 결국 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서울대 법조인 출신 정치 초보들이 사감(私感)에 빠져 공사(公事)를 그르치는 바람에 보수당은 총선에 대패하고, 정권 내주고, 이젠 지방 권력까지 내줄 처지가 됐다.

한동훈으로선 싸잡아 비난받는 게 억울할 것이다. 윤에게 드물게 직언한 소신파, 계엄을 앞장서 막아낸 사람이 누군가. 한은 내용도 절차도 하자투성이인 불의한 ‘당게 제명’의 피해자 아닌가. 모두 맞는 말이나 한동훈 스스로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주인공인 ‘착한 놈’이 못 되는 것이다. 윤이 계엄으로 탄핵당하자 한은 계엄을 막아낸 무용담을 책으로 내고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윤 정부의 2인자로서 책임지고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보수엔 한동훈만 한 사람이 없다’는 여론의 추대로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문제 될 것 없는 당게 사건을 대형 사태로 키우기까지 한의 무오류에 대한 강박과 오만의 책임은 없나.

한동훈 최종 징계 결정을 앞두고 당내 명망가들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하나가 돼 보수 재건의 길을 찾자”고 호소하지만 당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회복 불능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목격했던 생텍쥐페리가 썼듯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나 양쪽 다 이길 궁리만 하지 치유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윤석열#한동훈#장동혁#내전#당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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