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사랑터로 발전한 ‘동행식당’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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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취약계층에 식권 제공
식비 부담 던 주민들 자주 들러
음식 배달 통해 고독사 위험 낮춰
“내달부터 식권 대신 카드 도입”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김밥천국 서울역점 점주 구공례 씨(오른쪽)가 가게를 찾은 쪽방촌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쪽방촌 인근 식당 44곳을 ‘동행식당’으로 지정해 주민들이 하루 한 끼 8000원 상당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김밥천국 서울역점 점주 구공례 씨(오른쪽)가 가게를 찾은 쪽방촌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쪽방촌 인근 식당 44곳을 ‘동행식당’으로 지정해 주민들이 하루 한 끼 8000원 상당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오늘도 포장하시죠?”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김밥천국 서울역점. 점주 구공례 씨(64)가 중년 남성 손님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김밥 몇 줄을 만든 구 씨는 음식을 솜씨 좋게 포장한 뒤 남성에게 건넸다.

남대문시장에서 매점을 하던 구 씨는 2006년 6월 이곳에 가게를 냈다. 17년 동안 영업을 했지만 지난해 8월 서울시의 ‘동행식당’으로 지정되며 지역 주민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구 씨는 “따뜻한 끼니를 드시러 매일 오는 주민들이 늘면서 ‘동네 사랑방’처럼 변했다. 매출도 동행식당 지정 전보다 2배가량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 주민 사랑방 된 ‘동행식당’
서울시는 민간 식당을 동행식당으로 지정한 후 취약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루 8000원짜리 식권을 제공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약자와의 동행’ 프로젝트 중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및 물가 상승의 여파로 고통을 겪는 쪽방촌 주민들의 식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현재 서울역,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일대의 식당 44곳이 동행식당으로 지정돼 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구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모여 식사하며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식당에 방문했을 때도 쪽방촌 주민 5명이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있었다. 구 씨는 “이가 약한 어르신들이 많아 떡만둣국이나 육개장처럼 든든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식이 인기”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오므라이스를 먹던 조인형 씨(78)는 “이제 집처럼 편해져 꼭 식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하루 예닐곱 번은 들를 정도”라며 웃었다. 동자동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김정길 씨(77)도 “이곳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식권이 하루 두 장으로 늘면 좋겠다”고 했다.

구 씨는 “자주 보다 보니 누가 어떤 메뉴를 좋아하고, 포장을 선호하는지 등도 알게 됐다”며 “이름을 부르며 안색을 살피다 보면 건강 상태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독사 위험 낮추는 ‘보호막’ 역할
동행식당은 고독사 위험을 낮추는 ‘민간 커뮤니티’ 역할도 수행한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하늘소망교회 목사 A 씨(60)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 10여 명에게 매일 김밥천국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달 중 한 노인이 자신의 방에 쓰러져 몸이 차갑게 굳어가는 걸 발견하고 신고해 병원에 보내기도 했다. A 씨는 “쪽방에 거주하는 분 중에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지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상태를 살필 수 있다”고 했다.

구 씨는 최근 동행식당 지정 후 일어난 일들을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오 시장에게 전했다. 구 씨는 글에서 “주민들이 더 이상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아 건강도 좋아졌다. 또 식사 중 여유 있게 대화하며 ‘이렇게 좋은 날이 온다’고도 했다”고 적었다. 이에 오 시장은 7일 구 씨의 식당을 찾아 답장을 건네며 “이웃들의 한 끼를 책임질 뿐 아니라 이제 바람 쐬러 나가는 ‘마실터’이자 주민 간 ‘보호막’이 됐다”고 화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식권을 사용할 때 일부 주민들이 낙인이 찍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해 다음 달부터 전자식권(카드)을 도입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프로그램을 더 세심하게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쪽방촌 사랑터#동행식당#취약계층에 식권 제공#고독사 위험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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