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압색 영장 사전심문 추진…‘김명수 방탄’ 논란에 법원의 답은? [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9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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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임명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임명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 수사를 받는 김명수 대법원장 자신에 대한 ‘방탄’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이 힘없는 서민들의 민생 사건에 쓰이겠나. 전관 변호사를 써서 극렬하게 혐의를 다투는 권력자들 사건에 선택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가게 된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건 관계인을 사전 심문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 규칙 개정안을 두고 법원과 검찰이 공개 충돌하자,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같이 우려했다.

논란이 된 형사소송 규칙 개정안은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하는 법관이 검사나 경찰, 피의자와 변호인, 제보자 등을 불러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열리는 영장심사 같은 절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개정안 58조의2 제1항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법원은 이달 3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에 대해 다음 달 14일까지 외부 의견을 수렴한다. 형사소송규칙은 법률이 아니어서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다. 개정안 부칙에 오는 6월부터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입법예고 후 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서명하면 공포·시행된다.
●“압색 영장 사전 심문이 전관들의 또다른 영업장 될 것”
이를 두고 ‘법원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김명수 코트의 검찰 힘 빼기 논란 등은 부차적이며,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형사사법시스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라는 게 법조계 다수 의견이다.

법조계는 가장 큰 문제로 ‘선택적 심문’이 불러올 파장을 꼽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판사 개인의 재량에 의해 영장 사전 심문제도가 ‘차별 없이’ 이뤄질 것이라 자신하는 것은 오만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국민이 검찰과 법원을 불신하는 기저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한 깊은 박탈감이 깔려 있다는 점을 법원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교수)은 “판사가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영장 사전 심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형평성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서민이나 소시민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 영장은 쉽게 발부되는 반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압수수색 사건만 심문기일까지 잡아 혜택을 주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뉴시스.
검찰 내부는 크게 격앙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실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결국 사건 기록이 두껍고 사회적 논란이 상당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사건에서 사전 심문이 이뤄질 것”이라며 “전관 변호사들은 곧 압수수색이 닥칠지 모르는 권력자와 재벌 클라이언트들에게 영장 사전 심문을 주요 영업포인트로 삼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관 출신들이 거물급 클라이언트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맡아 치고 빠지며 거액의 수임료를 챙겨왔는데, 이젠 압수수색 사전 심문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 밖에 수사 밀행성 침해와 내부고발자가 다수인 제보자 보호 문제도 제기됐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제보자를 출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제보자를 통해 피의자에게 수사 정보가 흘러 들어가거나, 내부고발자가 대부분인 제보자가 사전 심문으로 노출되는 문제는 누가 해결하느냐”며 “수사 보안이 깨져 증거인멸로 이어질 우려도 상당하다”고 일갈했다.
●법원 “검찰 우려 지나쳐…수사 밀행성 해칠 가능성 없다”
반면 법원은 검찰이 지나치게 넓은 범위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 내부와 학계 등의 의견을 들어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충분히 논의했고,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에 관계기관 의견도 반영할 예정이어서 검찰 측 우려가 과도하다고 맞섰다.

제한된 심문으로 수사 밀행성을 해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법원은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심문 대상은 보통 영장을 신청한 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라며 “일부 복잡한 사안에서 제한적으로만 실시될 것”이라고 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100개 사건 가운데 99개는 예전처럼 서면심사로 하게 될 것이고 수사 밀행성을 고려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심문을 거치는 것”이라며 “압수수색의 실체적 요건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에 대해 그 내용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를 봐달라”고 강조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련 우려에는 “권력자 사건에서만 사전 심문을 할 것이란 논리 비약은 지나치다”고 일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방탄’ 지적에 대해선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박혁수)는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국회에는 거짓 해명을 한 혐의로 고발된 김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팀은 최근 김인겸 서울가정법원장을 방문 조사했으며, 보강수사를 거쳐 김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방법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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