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재난안전硏, 작년 ‘지하대피 매뉴얼’ 제안… 1년5개월째 반영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포항 태풍 피해]
지하공간 침수 가정한 실험했더니 50cm 물 차오르자 성인들 문 못열어
“대피방송때 주민 행동요령 알리고 계단 폭 2m 넘으면 양쪽 난간 설치”
행안부에 방재 매뉴얼 개선안 건의… 행안부 “1차 연구 끝나” 미완 상태
전문가 “매뉴얼 서둘러야 피해 막아”

폭우로 침수된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러 내려갔다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연구원)이 지난해 ‘지하공간 침수방지 매뉴얼’을 보완하자는 의견서를 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의 매뉴얼로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인데 의견을 낸 후 약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매뉴얼은 바뀌지 않았다. 이를 두고 “행안부가 즉각 매뉴얼을 고쳤다면 태풍 ‘힌남노’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매뉴얼 개정됐다면 피해 줄었을 수도”
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연구원은 지난해 4월경 “‘지하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 실무매뉴얼’(매뉴얼)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행안부에 제출했다. 행안부가 작성해 활용을 권고하고 있는 이 매뉴얼은 지방자치단체와 아파트·건물 관리 담당자들의 침수 시 재난 대응 기준으로 활용된다.

연구원은 의견서를 통해 △(사전에) 지하공간 침수 시 대피요령 홍보 콘텐츠 마련 △대피 방송 시 행동요령 안내 △계단 폭이 2m 이상인 경우 좌·우측 난간을 만들어 대피 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 △침수 시 쉽게 열 수 있도록 출입문이 지하공간 쪽으로 열릴 수 있도록 설치 안내를 할 것 등의 내용을 기존 매뉴얼에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호우 시 침수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반지하주택, 지하주차장 등의 대비 태세를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전문가 사이에선 6일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의 인명 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아파트에 이 같은 매뉴얼이 적용됐을 경우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매뉴얼은 의견서 제출 후 1년 5개월 정도 지난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TF) 등을 만들어 매뉴얼을 바꾸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면서도 “아직 1차 연구만 끝난 상황이라 매뉴얼에 반영되지 않았다. 매뉴얼이 새로 만들어지려면 2025년경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점을 감안해 적절한 대응 매뉴얼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차수판 등 안전시설 설치, 침수 시 세부 안내 요령 등은 지금 매뉴얼에 부족한 부분”이라며 “기상 이변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매뉴얼 재점검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 “물 50cm 차오르면 성인도 문 못 열어”
연구원은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실제 침수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한 2014년 실험을 참고했다. 당시 실험에선 물이 30cm(정강이 높이) 이상 차오르면 일부 성인이 출입문을 열기 어려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이 50cm(무릎 높이)까지 차올랐을 때는 실험에 참여한 성인 5명 중 아무도 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달 중부지방 폭우 당시 반지하주택에서 사망자가 나온 것도 문을 열지 못해 지하에 고립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구원은 물이 약간이라도 차오르는 것처럼 보이면 즉시 대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또 침수된 지하공간에서 대피할 때 계단 난간을 붙잡고 이동해야 하며,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향하도록 허리를 숙이는 게 좋다고 했다. 하이힐이나 슬리퍼를 신고 있다면 균형을 잃을 수 있으니 신발을 벗고 맨발로 대피하는 게 낫다.

연구원은 대피 방송 역시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지하공간 침수 시 시민들이 급박하게 대피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질서 있게 대피할 수 있도록 계단 탈출 요령과 난간 이용 등을 시청각 장비와 자료로 안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포항=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지하공간 침수방지 매뉴얼#침수#대피요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