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각로’ 골목에선…” 숭의동 109번지로 떠나는 추억 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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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 ‘골목-남겨진 기억展’
한국 최초 의료선교사가 별장 건립… 1950년대 ‘전도관 구역’으로 불려
슬럼화되며 한때는 우범지대 오명… 대규모 아파트 건립 재개발 앞두고
문패-동네 풍경 사진 등 무료 전시

인천시립박물관 1층 한나루갤러리를 찾은 여성들이 과거 대문에 붙어 있던 주소가 적힌 표찰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시립박물관 1층 한나루갤러리를 찾은 여성들이 과거 대문에 붙어 있던 주소가 적힌 표찰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중장년층 시민 가운데 상당수는 미추홀구에 있는 ‘숭의동 109번지’를 기억한다. 경인전철 도원역 뒤편에 위치한 이 동네 꼭대기에는 1890년 지은 서양식 별장이 있었다. 개항기 한국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방한해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앨런이 지은 이 건물은 6·25전쟁을 거치며 훼손됐고, 1957년 한 교회가 부지를 매입해 예배시설인 전도관을 건립하며 ‘전도관 구역’으로 불렸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빈 건물로 방치돼 왔다.

이곳은 동네 지형이 쇠뿔을 닮아 ‘우각로’라는 호칭도 붙었으며 1970년대 건물과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이 있었다. 동네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쇠뿔고개는 조선시대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통로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천부와 부천군을 나누는 경계가 됐다. 지금은 미추홀구와 동구로 행정구역을 가르는 구분이 된다.

미추홀구는 이 동네에서 ‘우각로 문화공동체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문화축제를 열고, 벽화 그리기 등을 통해 골목 풍경을 바꾸는가 하면 빈집을 인천지역 문화예술인에게 작업 공간으로 빌려줬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동네가 슬럼화되면서 한때 우범지대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결국 2020년 11월 이 동네 일대(면적 6만9000여 m²) 재개발 사업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통과되면서 1705가구가 입주하는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노후 주택 철거를 앞둔 3월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원들이 연장을 들고 이 동네를 찾았다. 동네가 없어지기 전 주민들이 남기고 간 물건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녹이 슨 대문에 나무와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달아 집주인의 이름을 알렸던 문패를 수거했다. 또 촘촘하게 나눠진 길의 위치를 알려주는 주소를 적은 행정표식인 표찰을 모았다. 사자와 같은 동물 모양의 문고리, 방범용 쇠창살 등도 수집했다. 동네 어귀에 있던 우체통과 가로등을 거둬들였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동네 풍경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촬영했다. 이 동네는 비가 내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TV 화면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온 가족이 동원돼 전파 수신 상태를 확인하며 바로잡았던 지붕 위 TV 안테나를 찍은 모습도 정겹게 사진에 담겼다. 성인 1명이 오르기 어려운 좁은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주택의 옥상과 이곳에서 바라본 언덕 위 전도관, 허름한 기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을 비롯해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인천시립박물관은 8월 14일까지 1층에 있는 한나루갤러리에서 ‘골목―남겨진 기억전’을 무료로 연다. 전시회에선 숭의동 109번지에서 수집한 유물을 테마별로 전시하고 있다. 오전 9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1946년 중구 송학동에 국내 첫 공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인천시립박물관은 1990년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으로 옮겨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연간 관람객은 10만 명이 넘는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들이 무의미하게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인천시립박물곤#한나루갤러리#숭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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