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탈출 고려인 소녀 “빨리 전쟁 끝나 엄마 만나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3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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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싫어요.”

3일 오후 5시 반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 고려인 50여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전쟁종식과 평화를 기원했다. 평화 캠페인(사진)에 참여한 고려인들 중 5명은 남아니따 양(10) 등 전쟁의 화마를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남 양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폭격에 무너진 키이우 집들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 전쟁이 빨리 끝나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 양은 러시아의 침공 다음날인 지난달 25일 집이 폭격으로 폐허가 되자 헤르손을 탈출했다. 전쟁이 빨리 끝날 줄 알고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이곳저곳으로 피신을 다녔다.

남 양은 지난달 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도착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많은 집과 건물들이 폭격에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동행했던 엄마는 이웃인 고려인 소녀(18)에게 남 양을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남 양은 지난달 14일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뒤 8일 후 한국에 입국했다. 남 양은 “평화로운 한국이 좋아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지식을 쌓고 미래의 꿈을 키우고 싶어요”고 말했다. 이어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 엄마를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크라이나 므콜라이우에서 탈출한 이미카엘로 씨(41) 부부도 이날 캠페인에 참여해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 고려인 3세인 이 씨는 1년 전 한국으로 건너와 일했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 우크라이나로 갔다.

이 씨는 포화에 휩싸인 므콜라이우에 있던 부인 김옐로나 씨(38), 아들(14), 딸(10) 등 가족 3명을 탈출시켰다. 그의 가족도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루마니아로 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폭격으로 길이 끊어진 곳이 많았다. 힘들게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뒤 한국에 왔다. 하지만 함께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자녀 2명은 경기도 안산 친척 집으로 갔다. 이 씨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씨는 “도움을 준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한다. 자녀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65)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32명이 광주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왔다고 설명했다. 이 중 대부분은 자가격리가 끝나지 않아 이날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광주고려인마을은 평화 캠페인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신 대표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에서 힘든 난민생활을 하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100명이 추가로 조상의 땅인 한국에 귀국할 수 있도록 각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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