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의 양적 증가보다 삶의 질에 주목… 생활습관 개선이 관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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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세인’ 〈하〉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 인터뷰
20년간 장수인 생활-환경 등 분석… 초고령자 사회적 여건 개선 고무적
한국 장수 비결은 식단-신체-환경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는 7일 “백세인 연구는 생활습관이나 환경요건을 분석해 행복한 건강장수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방안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는 7일 “백세인 연구는 생활습관이나 환경요건을 분석해 행복한 건강장수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방안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노화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적인 변화일 뿐이다.”

국내 최초로 ‘백세인’ 연구 분야를 개척한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72)의 노화에 대한 정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노화가 생명체가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숙명적인 변화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진지한 노력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노화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서울대 의대에서 생화학교실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하면서 장수 연구에 매진했다. 노화학 분야 세계적인 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국제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노인의학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주는 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IAGG) 회장상, 올해의 과학자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국내 의학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시노 필 아시아 국제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고향인 광주로 내려와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부임한 이후 전국을 돌며 장수사회, 미래사회, 노화 연구 등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가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공적인 노화에 가장 근접한 초장수인들을 대상으로 평균 수명을 사는 일반 사람과 어떤 점이 다른가를 밝혀내는 일은 인류의 꿈인 건강장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왜 백세인 연구가 중요한가.

“불멸장생과 건강장수는 모든 인간의 꿈이며 이러한 꿈에 근접한 사람들이 바로 100세 이상을 건강하게 살고 있는 초장수인들이다. 인간 장수의 상징인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장수의 생물학적 의학적 요인은 물론이고 생활습관이나 환경 요건을 분석해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한 건강장수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방안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의 백세인 20년의 변화’를 펴낸 소감은….

“2001년 처음 시작한 한국의 백세인 조사가 2009년 단절돼 아쉬운 마음이 컸다.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오면서 구곡순담 지역의 백세인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됐다. 20년 동안 백세인의 양적 증가도 있었지만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질적 개선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기뻤다. 조사 결과가 미진한 점이 있긴 하지만 백세인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초고령자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고령사회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20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04년부터 노인복지 관련 법, 노인일자리 및 노인수당 관련 법, 장기요양법, 노인건강 증진 및 보호 관련 법들이 순차적으로 개정 또는 신설됐고 우리 전통사회 핵심 가치 중 하나였던 장자상속을 폐지하는 법이 발효됐다. 그 결과 백세인의 거주 환경과 부양 체계가 크게 변했고 생활습관 개선 운동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장수 비결을 꼽는다면….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불로초다. 입으로 먹어서 장수를 기대하는 전통식단이다. 백세인 조사를 통해 채소를 나물처럼 주로 데치거나 무쳐서 먹는 조리 방법과 육류 섭취 한계를 발효식품으로 보완하는 전통식단이 바로 장수식단이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둘째는 불로장생술이다. 신체단련을 통해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백세인들은 매일 끊임없이 일하며 움직이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셋째는 불로촌이다. 백세인들이 거주하는 환경과 공동체 정신이 바로 장수지역을 이루고 있었다. 전통사회의 공동체 정신인 두레정신이 강한 지역일수록 장수도가 높게 나왔으며 주민들과 백세인들의 소통이 원만할수록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세인들을 만나면서 느낀 소감은….

“백 살이 넘었어도 팔굽혀펴기를 100개 하는 분, 새벽이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을 깨우는 분, 아직도 지게 메고 농사짓는 분, 밤이면 한학을 공부하는 분, 산을 넘어 친구 찾아가는 분, 동네 궂은일 솔선하여 처리하는 분 등 헤아릴 수 없는 분들이 감동을 주었다. 백세인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거룩함 그 자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수 사회에 주는 교훈은….

“노인 치사율이 높은 코로나19 사태는 고령사회에 강력한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80대 이상 치사율이 20%를 넘고 사망자의 95% 이상이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만성 폐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었다. 기저질환은 대부분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 결국 생활습관 개선 노력과 함께 지금까지 선호했던 밀집주거 공간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향후 연구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미래의 생명과 사회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바뀌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조사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공동체 주민들이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운동도 시작하고 싶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한국의 백세인#생활습관 개선#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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