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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장흥 할매들 ‘늦깎이 詩’로 사랑을 나누다

입력 2021-11-16 03:00업데이트 2021-1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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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시-그림 공부 할머니 6명
작년 출간 시화집 인세 300만원
집안사정 어려운 청소년에 기부
“희생과 봉사가 가장 흐뭇한 일”
시화집 ‘할매들은 시방’의 작가인 왼쪽부터 박연심, 정점남, 백남순 할머니가 12일 전남 장흥군 용산면 월림마을 마을회관에서 정종순 장흥군수와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세 300만 원을 기탁하고 있다. 장흥군 제공
지난해 3월 시화집 ‘할매들은 시방’이 출간됐다. ‘시방’은 전라도 사투리로 ‘지금’ ‘당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시(詩)’ ‘방(房·공간)’이란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

시화집은 전남 장흥군 용산면 월림마을의 할머니 6명이 함께 냈다. 30가구 5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인데, 모두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이다. 김기순(82), 박연심(81), 백남순(86), 위금남(83), 정점남(81)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맏언니 격인 김남주 할머니는 두 달 전 작고했다.

책은 힘든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들의 삶의 무게와 순수함을 시와 그림으로 담아냈다. 글을 몰라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남편과 가족에 대한 마음속 이야기부터 같이 사는 고양이와의 일화까지. 책은 할머니들의 고됐던 인생살이와 소소한 일상이 교차한다.

할머니들은 2015년 3월부터 마을에서 2km 떨어진 초등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깨쳤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한글교실에서 글을 배웠는데 수업을 빠지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고 쓸 줄 모른다’는 건 할머니들에겐 평생의 한이었다. 주변에서는 ‘편하게 쉬며 효도받으시라’고도 했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기쁨이었다. 글쓰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마을회관에서 그림을 배워 초상화도 직접 그렸다. 이렇게 배운 글과 그림 솜씨로 가끔씩 작은 낭송회, 전시회도 가졌다.

할머니들은 책을 내고 두 달이 지난 지난해 5월 용산면 전통시장에서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할머니들을 축하하고 응원했다. ‘할매들은 시방’은 1쇄 2000부가 모두 팔렸다. 현재는 2쇄가 서점 등에서 팔린다. 이광식 월림마을 이장(70)은 “할머니 6명이 배우려는 학구열이 너무 커서 주민들 모두 응원했다. 시를 보면 너무 순수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이런 이웃들의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했다. 결국 수익금을 집안 사정이 어려운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쓰자는 데 뜻을 모으고 인세 300만 원 전액을 장흥군에 선뜻 맡겼다. 백남순 할머니는 “함께 글을 배우고 아이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너무 즐겁다”며 “사람이 살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가장 흐뭇한 일”이라고 기뻐했다.

장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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