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획 시기상조’라는 정부…”병상 확충이 능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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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1월 12일 0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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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1.11.1/뉴스1 © News1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1.11.1/뉴스1 © News1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연일 최다치를 찍고 수도권의 중환자 병상이 빠르게 소진되자 “다음달이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를 계속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망자까지 늘어나는 피해를 막으려면 일상회복을 잠시 멈추고 비상계획을 가동하자는 의미다.

정부는 현재 의료대응에 문제가 없다며 비상계획 전망은 성급하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피해를 보지 않을 만큼 사전 대비하자”는 의도라며 사전, 예비 경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의료체계의 여력을 놓고 정부와 전문가들의 체감 차로 보인다. 정부는 비상계획 세부지침을 이번 주 안에 확정해 오는 16일 발표할 계획이다.

◇비상계획 핵심지표는 ‘중환자 병상 가동률’…정부 “500명 이상 감당”

1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10일 오후 5시 기준 수도권 중증환자 전담 병상은 72.9% 사용하고 있다. 특히 서울은 345개 병상 중 258병상을 쓰고 있어 74.8%, 경기는 263병상 중 70.7%, 인천은 79개 병상 중 72.2%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비상계획 발동 기준의 사례로 든 상황과 비슷하다. 정부는 ‘감염병 전담병원 병상 가동률이 7일 이동평균 60% 이상이면 경고를,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이 75% 이상일 때 비상계획을 내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상계획 관련 세부 지침을 이번 주에 확정해 (16일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역학조사팀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비상계획의 핵심 지표”라며 “위험도 평가 결과에 따라 어떤 조치를 할지 등의 지침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감염병 전담병원과 준중환자(중증에서 호전되거나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 높은 환자) 병상 역시 여유가 없다. 9일 오후 5시 감염병 전담병원 병상 가동률은 서울 74.3%, 경기 78.7%였고, 수도권 3개 지자체의 준중환자 병상 역시 가동률이 80%대였다.

정부는 지난 5일 수도권 종합병원에 하루 7000명의 확진자 발생도 감당할 수 있도록 중증환자 전담 병상과 준중환자 병상 추가 확보를 명령했다. 병상 확보에 최소 4주가 걸릴 예정인데, 관건은 준비한 것보다 중환자·준중환자 증가 속도가 빠를지 여부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도, 전문가도 확진자가 얼마나 늘지 예상할 수 없다. 일상회복의 영향은 이번 주 중반부터 다음 주에 나타날 텐데 그때 확진자 증가를 확인해야 구체적인 지표를 마련할 수 있다”며 “7000명 발생할 만큼 확산세가 거센데 그 시기가 빠를 수 있어, 준비해야 한다. 이게 일상회복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위중증 환자 500명 이내로는 의료대응이 원활한데, 500명보다 더 나와도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행정명령으로 병상을 확충하면, 상태 호전된 중환자들을 준중환자 병상으로 보내는 등 효율화 작업도 원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당 가능한 수준이 500명이라고 밝혔던 데는 병상 확충 이전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비상계획 사전 예비경고부터 자세히 만들자는 뜻”

김부겸 총리가 31일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들을 비롯한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중 CCTV로 병상을 확인하고 있다.2021.8.31/뉴스1 © News1
김부겸 총리가 31일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 코로나19 병동에서 간호사들을 비롯한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중 CCTV로 병상을 확인하고 있다.2021.8.31/뉴스1 © News1
11일 기준 재원 중인 위중증 환자는 473명으로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다치를 기록했다. 백신접종 후 경과 시간이 오래됐거나 접종조차 받지 않은 60대 이상 고령층 확진자가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은경 청장 역시 다음 달 일상회복 2단계로의 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 청장은 이날 “확진자 규모는 예상 범위에 있는데, 위중증 환자가 좀 더 빨리 늘었다. 상황이 나빠지면 1단계로 계속 가거나 조치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유행과 중환자·사망자 급증 우려를 생각하면 하루빨리 비상계획, 이른바 ‘서킷 브레이커’ 발동 준비에 나설 때라고 주장했다. 국민 일상을 회복하려다 의료 체계가 붕괴하면 그 피해 역시 국민에 돌아간다는 의미다.

정부가 일상회복 이행안을 발표할 때 언급한 비상계획 발동 시 방역 조치는 Δ방역패스(접종 증명·음성 확인제) 확대 Δ사적 모임·행사 규모 및 영업시간 제한 Δ취약시설 면회 금지 Δ병상 확보 및 재택치료 확대다. 정부도 큰 틀에서의 내용만 공개했다.

정부는 수도권에만 비상계획을 발동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비상계획을 부분 시행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일각에서 비상계획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아직 이르다. 일상회복 체제에 확진자와 위중증 증가는 필연적이다. 이 정도 추이는 의료체계가 감당 가능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반장의 설명은 ‘단계적 일상회복 초기, 벌써 과하게 걱정이 번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지금 상황을 관망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장을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병상확충을 최우선으로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병상확충만으로 중환자 급증을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확진자가 7000명~1만명 나와도 위드코로나 계속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중환자는 1000명”이라며 “확진자 5000명에 병상가동률이 60%를 초과한다면 비상계획 발동해야 한다. 위드코로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듯, 비상계획 역시 단계적으로 발동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10일 보건의료노조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정부의 위드코로나 계획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같다.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고정된 병상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보라고 하지 않는다.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를 보지 않으려니 내린 고육지책이지만, 늘어나는 확진자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윤 교수는 “환자를 보는 것은 의료진이다. 병원에 인력이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책이나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감염병센터를 정해 병상과 인력, 장비를 확충해 지역별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비로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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