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연탄 온정’ 반토막…올 겨울 백사마을이 더 춥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7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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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최저기온이 1도까지 떨어진 2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불암산 자락에 있는 백사마을.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니 마을 아래보다 주변 공기가 더욱 서늘해졌다. 이곳에 사는 김수복 씨(75)는 벌써부터 양털 외투와 바지, 털양말 차림이었다. 바지 밑단으로 회색 내복이 보였다. 연탄을 떼는 김 씨의 집에는 볕이 거의 들지 않았다. 기자가 집에 발을 딛자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김 씨는 대회 내내 몸을 웅크린 채 손을 비벼 두 다리 사이에 끼우기를 반복했다.

집 한 귀퉁이에있는 연탄창고는 텅 비어있었다. 김 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연탄이 부족할 때 전화하면 봉사자들이 2, 3일 안에 가져다 줬는데 요즘엔 좀처롬 오지 않는다. 얼마 전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 둬 연탄을 주문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사태 이후 김 씨 같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연탄 후원이 절반 넘게 줄었다. 사회복지법인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 9, 10월 연탄 후원은 총 12만 장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같은 기간 후원 물량(35만 장)과 비교해 약 65.7%가 줄어들었다.

이맘때면 연탄을 나르는 봉사자도 1200명이 넘게 찾아오곤 했지만 올해는 4분의 1 수준인 336명에 그쳤다고 한다. 8년째 연탄 봉사를 하고 있는 박진우 씨(37)는 “눈이 오는 날 새벽부터 마당 눈을 쓸며 봉사자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해 매년 봉사를 하러 온다”며 “코로나 이후 (봉사자가) 어림잡아 70%는 준 것 같다”고 했다.

통상 연탄 후원은 연탄 구매 뿐 아니라 회사 동호회나 학교에서 단체로 나와 연탄을 날라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단체 봉사가 줄어 자연스레 연탄 후원까지 급감한 것이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중․고등학생들의 봉사 등이 모두 취소됐다. 확진자가 나와 봉사 하루 전날 취소되는 일도 많다”고 했다.

백사마을 주민 박송자 씨(80)는 “연탄은 금덩어리”라고 했다. 박 씨의 집에는 공기를 데우는 난로와 바닥을 데우는 난로가 따로 설치돼 있는데, 어느 하나만 떼면 보온 효과가 없어 하루 10장 정도의 연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날 박 씨의 집 연탄창고에는 연탄 3, 4장이 전부였다. 박 씨는 “연탄이 부족하니 불씨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난방을 하는 버릇이 들었다”고 했다.

이날 백사마을에는 김 씨와 박 씨 가족을 포함해 약 30가구에 각각 150장의 연탄이 후원됐다. 아무리 아껴 써도 두 달 넘게 버티기는 어려운 양이다. 이 마을에서 연탄 난방을 하는 160가구 중 130가구는 연탄을 아예 받지 못했다. 어린 손자를 키우는 이정자 씨(84) 부부는 “예전엔 따로 요청을 안 해도 연탄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아쉬운 소리를 해도 연탄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전국 8만1721 가구가 연탄 난방을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 등 열악한 가구가 84.2%(6만8816 가구)를 차지한다. 연탄 가격은 장당 800원 정도. 하루에 최소 10장의 연탄을 쓴다고 가정하면 한 달 난방비는 어림잡아 24만 원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조사한 겨울철 가구당 월평균 난방비 12만9000원의 두 배에 달한다.

허기복 밥상공동체 복지재단 대표는 “올해 연탄 후원 목표가 250만 장인데 현재 10만 장 정도만 들어온 상황”이라며 “월 소득이 30만 원 정도인 어르신들이 월세, 약값을 내고 나면 연탄을 사서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정민 인턴기자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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