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인정하는 데서 고독탈출 시작”… 英, 봉사 등 구체 활동 권유[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10-09 03:00수정 2021-10-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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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日의 고독 해법
조 콕스 의원 정책과업 유지 계승… 英정부, 고독부 설치 사회적 처방
복지사와 상담 등 대처법 알려주고, 공동작업 등 퇴직자 위한 서비스도
日, 자살자 늘자 고독대책실 마련… 가족-친구와 유대 강화에 중점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고독이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을 뜻한다면 사회적 대응은 가능한 영역일 수 있다.

○ 비명에 숨진 초선 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명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 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 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500억 원), 경제 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8000억 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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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

고독 문제를 평생 과업으로 삼으려 했던 조 콕스 의원(왼쪽 사진)은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의 뜻을 이어받아 결성된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2017년 말 발표한 보고서 표지(오른쪽 사진). 영국 정부는 이 보고서 발간 한 달 뒤 고독부 장관 신설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 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 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를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유발하는 의료 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 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

○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

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 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 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지. 이 외에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 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셰어드 라이브스(Shared Lives)’,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하는 ‘멘스 셰드(Men‘s Shed)’,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HostNation)’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 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

고독사와 은둔형 외톨이 등으로 고심해 온 일본은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이 늘자 ‘고독고립 대책담당상’을 만들었다. 현판식 장면. 아사히신문 제공
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 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 수는 2만919명으로 1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 상황 등을 사용해 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 빈도가 ‘2주일에 한 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 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 남성이 8.4%였다. 현역 세대에서도 독신 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 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

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 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 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 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월딩어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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