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임용 경력 10년 → 5년 축소’ 법 개정 무산… 與 발의해놓고 與 이탈표에 4표차 부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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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등 반대에 여권 일부 동조
여야 합의 상정 후 부결 이례적
숙원사업 추진 대법원 곤혹

‘판사 부족 사태’를 우려해 판사 임용 시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도록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31일 4표 차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개정안에 대해 비판해온 데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이 “사법개혁 후퇴”라고 비판한 것이 여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 여야 합의로 상정했지만 부결 ‘이변’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29명 중 찬성 111명(48.47%), 반대 72명, 기권 46명으로 부결됐다. 법안 통과를 위해 재석 의원 과반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데 115표에서 4표가 모자란 것. 민주당 우원식 황운하 의원 등 반대표의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에서 나왔고 정의당과 열린민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여당 의원 주도로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회의에서 제동이 걸린 것.

표결에 앞서 진행된 찬반 토론에서는 민주당 홍정민 의원과 같은 당 이탄희 의원이 맞붙었다. 법안 발의자인 홍 의원은 “법조계 일각에서의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재판 지연으로 국민들께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최소 법조 경력이 10년 이상으로 판사 임용 기준이 강화된다면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판사 출신인 이 의원은 반대 토론자로 나서 “우리나라 법조 현실과 전체 사법시스템에 장기적으로 최악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최소 경력을 5년으로 하면) 법원은 변호사시험 성적 좋은 사람들을 ‘로클러크’로 입도선매하고 대형 로펌들은 3년 뒤 판사로 점지된 이 사람들을 모셔가기 위해 경쟁하는 ‘후관예우’가 생긴다”고 맞섰다.

여야 합의로 본회의로 상정된 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자 여야 모두 예상 밖의 일이라는 분위기다. 여당 의원 간 찬반 토론이 맞붙자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이 기권 표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 대법원 “우수 인력, 판사 지원 안 해” 우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조 일원화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우수한 판사 부족 사태 등이 예상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3년부터 시행된 법조 일원화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졸업해도 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않고 5년이나 10년 등 일정한 경력과 사회적 경험을 쌓은 변호사, 검사를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다. 현행법에선 올해까지 5년, 내년부터 7년, 2026년부터는 10년의 법조 경력이 있어야 판사로 임용될 수 있다.

하지만 최소 법조 경력으로 7, 10년을 요구하면 자질과 경륜을 갖춘 우수한 법조인이 판사로 지원하지 않는 만큼 대법원은 10년 요건을 줄이자고 주장해왔다. 이미 법무법인과 검찰 등에서 자리를 잡은 만큼 연봉 등이 낮은 판사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홍기태 사법정책연구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판사가 고령화돼 방대한 기록과 복잡한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뿐만 아니라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 법조계 주요 기관도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숙원 사업으로 삼던 대법원은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대법원은 반대 여론에 대한 설득 작업 등을 거쳐 올해 안 개정안 통과를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판사임용#경력축소#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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