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제품만 구입…“배탈났으니 신고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1일 1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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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안에서 이 물건 저 물건을 오랫동안 확인하는 모습이 이상하긴 했어요.”

충남 논산시 T마트 주인 A 씨는 4월 22일 B 씨(23)로부터 난데없는 협박을 받았다. B 씨가 찾아와 전날 햇반을 구입한 영수증을 보여주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먹고 배탈이 났다. 시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이었다.

실제 마트 안에 진열 중인 제품을 확인해보니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상태였다. 물품이 워낙 많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할 경우 300㎡ 이상 대형 슈퍼마트의 경우 한번만 적발돼도 영업정지 7일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매출액 규모에 따라 하루 최고 367만 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2000만 원 이상 과징금을 물어야 할 처지였다.

A 씨는 결국 합의금조로 400만 원을 B 씨에게 건넸다.

대전 유성구의 또 다른 T마트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역시 B 씨가 찾아와 “우유를 사 먹고 배탈이 났다”며 떼거지를 쓰는 바람에 300만 원을 주고 해결했다.

절도 등 전과전력이 있는 B 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대전 충남 세종지역 대형 마트 등을 돌며 모두 22차례에 걸쳐 비슷한 방식으로 마트 업주로부터 3100만 원을 뜯어냈다. 결국 경찰에 꼬리를 잡혀 10일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전형적인 ‘블랙 컨슈머’다.

B 씨의 범행 대상은 국내 유명 초대형 마트가 아닌 100평 안팎의 중형 마트가 주로 타킷이었다. 대형마트의 경우 유통기한 제품관리가 엄격한데다 별도의 법무 대응팀을 운영하는 데 반해 중형 마트는 물품이 많은데 반해 엄격한 제품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B 씨의 범행에는 중고등학교 친구 등 동료 6명도 동원됐다. 이들은 대전 충남 세종지역 마트를 순회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물색했다. 이어 제품을 구입한 뒤 B 씨에게 영수증과 함께 건네면 B 씨는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B 씨와 동료 등이 마트 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물색하는 장면은 고스란히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 담겨 있다.

B 씨 등의 협박에 저항했다가 영업정지를 받거나 거액의 과징금을 문 사례도 있었다.

대전 유성구 K마트 주인은 B 씨가 협박해오자 “신고할 테면 해봐라”고 대응했다가 유성구청 조사로 결국 영업정지 7일 처분을 받았다.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J마트도 B 씨 요구를 거절했다가 580만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피해자들은 경찰조사에서 “일일이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걸러내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며 “코로나19로 식자재 매출도 크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B씨 일당의 협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고 말했다.

첩보를 통해 이 사건을 수사해 온 대전 유성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원은 “피해자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연수 형사과장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해 온 마트도 문제지만 이를 악용한 ‘블랙 컨슈머’에 대해선 생활범죄 대응차원에서 엄정하게 다루고, 유사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업주의 자발적인 노력과 의심 시 적극적인 신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유통기한 경과 식품에 대한 조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유사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만큼 무엇보다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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