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억하는 탄흔… 계엄군이 쏜 M16 의심 흔적 929개 발견

광주=이형주 기자 입력 2021-04-14 03:00수정 2021-04-1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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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옛 전남도청 등 6곳 조사
15개는 40년 지나도록 박혀 있어
한국전통문화대 이상옥 초빙교수가 옛 전남도청 1층 서무과 출입문 주변 벽에서 M16 총알 3개를 뽑아낸 곳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총알 3개는 5개로 쪼개져 있었다(아래쪽 사진).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27일 오전 4시경 광주 동구 전남도청 앞. 계엄군이 시민군의 마지막 항쟁지인 도청에 M16 소총을 쏘며 진입했다. 11공수부대는 정문으로, 3공수부대는 뒷문인 전남경찰국으로 밀고 들어왔다. 타깃은 도청 본관 1층 서무과에 차려진 시민군 상황실과 지하 무기고. 진입 과정에서 시민군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뒤 도청과 경찰국은 2005년 전남 무안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여러 차례 보수공사가 이뤄졌다.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도청과 경찰국 등 6개 건물에 대한 탄흔조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조사는 무려 9개월 동안 진행됐다. 건물과 나무에서 탄흔으로 의심되는 929개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 중 15개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총알이 박혀 있었다. 서무과 출입문 위쪽에는 3∼4cm 깊이로 총알 8개가 박혀 있었다. 계엄군이 도청 2층에서 시민군 상황실로 사격한 흔적이다.

본관 앞 은행나무와 회의실 옆 소나무에는 15cm 깊이로 군데군데 총알이 있었다. 경찰국 본관 외벽에서도 2개를 찾아냈다. 구멍은 11∼16mm 크기였고 총알 1개 무게는 1.1∼1.5g 정도였다. M16소총 강선 흔적이 남아 있는 탄두도 여러 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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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복원추진단장은 “문헌과 목격자 증언, 당시 사진·영상을 토대로 탄흔을 확인했다”며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이 품고 있던 그날의 기억과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탄흔#계엄군#옛 전남도청#m16 의심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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