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신현수에 화난 文, 검찰해체 몰아칠 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5일 11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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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142일 남기고 “檢서 내가 할 일 여기까지”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이 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라며 사의를 밝혔다. 윤 총장은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임기 142일 남기고 “檢서 내가 할 일 여기까지”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이 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라며 사의를 밝혔다. 윤 총장은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문재인 정부에 4일은 ‘앓던 이’ 2개가 한꺼번에 빠진 날이었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임명 직후부터 ‘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찰 인사 패싱에 항의하며 ‘사의 파동’을 빚은 신현수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한 날, 거의 같은 시각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이 사퇴 발표를 한지 1시간여 만에 즉각 사의를 수용했고, 그로부터 45분 뒤인 오후 4시 신 수석의 후임자를 발표했다.

사퇴 발표 2시간 만에 검찰총장의 사표와 민정수석의 사표를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정권의 핵심 사정라인을 모두 정리해 버렸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두 사람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그만큼 상황에 대한 대비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사람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에서 박해받던 그를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하며 총애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국 수사’ 이후 정권에 지속적으로 칼을 겨눈 것에 대한 누적된 배신감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연초 신년 기자회견 때만 해도 윤 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를 일부 포용하는 듯한 발언을 했으나 윤 총장은 4일 사퇴하면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 전 수석의 경우도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과 사정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춘 이후 두터운 신뢰관계를 맺었지만 그의 사의 파동이 ‘대통령 패싱’ 의혹으로까지 번지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 통치권에 부담을 준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정수석 교체 김진국 신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이 4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신현수 전 민정수석을 지나쳐 단상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민정수석 교체 김진국 신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이 4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신현수 전 민정수석을 지나쳐 단상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두 사람의 동반 퇴진은 또 문 대통령이 검찰에 대해 가지는 불신과 반감을 드러내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직 총장이었던 윤 전 총장은 물론이고 신 전 수석도 검사 출신이다. 문 대통령이 신 전 수석의 후임 민정수석으로 비검찰 출신인 김진국 변호사를 임명한 것도 ‘이제 더는 검찰 출신을 믿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뜻이 읽히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윤 전 총장과 신 전 수석의 동반 사퇴는 정권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사정라인에 대한 문 대통령의 관리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황들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 않기 위해 향후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압박 카드는 두 가지. 즉 ‘검찰조직 장악’과 ‘검찰 해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윤 전 총장 사퇴 직후 곧바로 법에 정해진 관련 절차를 밟아 후임 총장 인선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법안 통과도 되지 않았고 시행까지 얼마가 걸릴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매달리기보다는 당면한 차기 총장 인사를 통해 검찰조직을 정권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누가 되든 차기 검찰총장은 현 정권에 칼을 겨누지 않을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가 임명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월성 원전 수사와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수사,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 등 민감한 정권 수사를 후임 총장을 통해 우선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윤 전 총장이 있을 때는 어려웠지만 정권과 손발을 맞추는 후임 총장이 안전판 역할을 하면서 현 정권 인사들을 위협하는 수사를 유야무야시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기 총장과 법무부 장관, 여당이 합세해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검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실제 여당에서는 윤 총장이 사퇴한 직후 “중수청 속도조절은 없다”며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이 중수청 신설을 계속 추진해 관련 법안이 이르면 6월이나 올해 안에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법통과 후 최소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국가 공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이 앞으로 1, 2년은 더 유지될 수밖에 없다.

차기 총장은 그 과도기에서 민감한 권력 수사를 통제하고 검찰 수사권을 완전 폐지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후임 검찰총장 인선에 대해 “차기 검찰개혁 과제를 안정적으로 완수하고 관련 제도의 안착을 도울 수 있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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