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중단보다 접종이 이익 큰 이유는

  • 뉴시스
  • 입력 2020년 10월 29일 12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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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백신과 사망 사례 인과성 낮다고 판단
"기온 하락으로 기저질환 악화되는 경우 많아"
"사망신고 급증은 '자극받은 보고'일 가능성"
접종 중단할 경우 독감으로 인한 사망 증가 위험

최근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면서 사회적 우려감이 증폭됐지만 정부는 백신 접종이 중단보다 이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백신과 사망 사례 간의 인과성이 낮다고 결론을 내리고 접종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같은 판단을 내린 근거는 무엇일까?

29일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으로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는 59건이었다. 당국은 기초 조사와 역학 조사, 부검 결과 등을 검토해 46건은 백신과 사망 간의 인과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13건은 역학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방역 당국은 ▲사망자에게 백신 이상반응으로 추정되는 소견이 없고 ▲심혈관계 질환, 뇌혈관계 질환, 당뇨, 간경화, 부정맥, 만성폐질환, 암 등 기저질환 악화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높으며 ▲부검 결과 대동맥 박리, 뇌출혈, 폐동맥 혈전색전증 등 명백한 다른 사인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망자의 90% 이상은 60대 이상이었고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사망이 백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접종 환경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독감 백신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됐다기보다는 백신을 접종하는 환경, 올해의 특수한 상황들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상온 노출, 백색 입자 등의 문제로 접종 일정이 늦어지다보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70세 이상 접종이 19일 시작됐고 이틀 동안 330만명이 접종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령자들은 동맥경화가 있는 경우가 많다. 기온이 내려가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류가 감소한다. 추운데서 대기하면 탈수가 오고 혈전이 생긴다. 신체 장기에서 혈액 공급이 중요한 곳이 심장과 뇌인데 혈관이 좁아지면서 심근경색, 뇌출혈, 뇌경색 등으로 사망한 사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해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과거 19년간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는 25건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현재까지만 해도 50건 이상의 사망 사례가 신고됐다.

일부 전문가는 이같은 현상이 자극받은 보고(stimulated reproting)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과거 영국에서도 금연 보조제로 사용되는 ‘바레니클린’이라는 물질이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자 자살 행동과 자살 보고가 급증했던 사례가 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트윈데믹에 대한 우려로 많은 사람들이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상온 노출 사건 등이 터지다보니 예방접종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며 “이 때문에 (사망) 보고는 계속해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자극받은 보고가 증가하지만 과연 (백신과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국은 예방접종 중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인과 관계가 있으려면 특정 백신이거나 증상에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공통된 임상적 특징은 없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인플루엔자(계절 독감) 예방접종 후 7일 이내 사망자는 1503명이었다. 고령자의 독감 백신 접종률이 90%에 달하고 매년 60세 이상의 돌연사가 2만명 가까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백신과 인과관계 없이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발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당국은 오히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독감에 걸려 합병증 등으로 사망할 위험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매년 독감 및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1000~3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백신으로 인한 사망은 인과성이 매우 낮은 반면 독감으로 인한 사망은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게 당국의 판단이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사망률은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접종률이 낮은 미국의 경우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매년 5만~7만명 가량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률이 떨어질 경우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3000명이 적은 숫자도 아니지만 그나마 독감 백신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고령자들이 독감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사망자 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는 접종을 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할 경우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환자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위험도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일부 의료계 인사들이 독감 접종 일시 중단을 권고하기도 했지만 정부는 시기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백신 접종 후 항체 형성에 2주 가량이 걸리고 독감이 매년 11월 중순부터 유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접종 시기를 더 늦출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또 백신 접종을 일시 중단할 경우 기온이 더 떨어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접종을 하게될 수 있어 고령층 등에서 위험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선규 질병청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유행 절정 상황이 언제 올 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며 “예방접종이 권장되는 고령층이 빨리 접종해 항체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전문가 의견, 위원회 심의를 거쳐 예방접종 일정 지속을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독감 백신 접종 중단을 권고했던 의협도 30일부터 접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독감의 유행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다만 의료계는 상온 노출 백신 등의 사태로 백신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정부가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의협은 “현재 독감백신 접종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음을 밝힌다”며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현 상황을 안일하게 인식해선 안되며 경각심을 갖고 독감 백신과 관련한 매우 낮은 가능성 또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합병증의 가능성까지 고려해 접종을 진행하고 관련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교수는 “일부 상온 노출 백신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빨리 나서서 사망 사례와 연관된 백신 제품 번호의 남은 백신을 수거해 오염·변질 여부 등을 조사해 출하 당시 품질성적서와 동일한 품질을 갖고 있는지 빨리 발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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