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요? 아… 가장 친한 친구? 우리집 햄스터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코로나에 갇힌 세상… 초등 1학년에게 학교란 어떤 의미일까
함께 한창 뛰놀아야 할 친구들과 안 만지고 거리 두는 법부터 배워
학교 친구 마스크 속 얼굴 잘 몰라… 옆자리서 지우개도 못 빌리게 해

초등학교 1학년 강시원 군이 원격 수업에 접속해 출석 체크를 하고 있다. 시원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원래 매일 가는 곳인지 몰랐다고 한다(위 사진). 일주일에 한두 번 보던 선생님을 19일부터 매일 만날 수 있게 된 권도윤 군이 가방에 학용품을 챙기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아래 왼쪽 사진). 김윤지 양(7)은 여름방학에 이모네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독자 제공
초등학교 1학년 강시원 군이 원격 수업에 접속해 출석 체크를 하고 있다. 시원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원래 매일 가는 곳인지 몰랐다고 한다(위 사진). 일주일에 한두 번 보던 선생님을 19일부터 매일 만날 수 있게 된 권도윤 군이 가방에 학용품을 챙기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아래 왼쪽 사진). 김윤지 양(7)은 여름방학에 이모네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독자 제공
“상훈이는 짝이 누구야?”

“짝…, 그게 뭐야?”

경기 안산에 사는 원상훈(가명·7) 군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4일 만난 상훈에게 짝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학교에서 옆에 같이 앉는 친구’를 말한다고 했더니 그제야 “아하…”라면서도 머뭇거렸다. 상훈의 어머니는 “학교를 거의 가지 못하다 보니 친구 이름을 잘 모른다. 게다가 요즘은 옆에 붙여 앉히질 않으니…”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상훈이는 학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학년이면 한창 뛰어놀 나이인데 “어쩌다 가봤자 자리에 앉아서 책만 읽고 온다”며 툴툴댔다. 친구 이름도 한참 만에 4명쯤 얘기하고는 더는 모른다고 했다. 친구들 생김새를 물어보니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정확히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나온 건 올 1월. 그 여파로 전국 초등학교는 제대로 입학식도 개학식도 치르지 못했다. 그 여파는 지금껏 이어졌다. 19일부터 서울과 인천 등에서 초1을 시작으로 전원 등교를 개시한다지만 상황이 다시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코로나19 시대는 초1 신입생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짝은커녕 친구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고, 담임교사의 얼굴도 낯설다. 급식마저 칸막이로 갈라진 자리에 앉아 먹어야 했다. 그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저 빨리 수업만 듣고 오는 곳이었다. 2020년 ‘학교가 처음이었던’ 2013년생 아이들을 만나봤다.

○ 학교가 낯설고 힘겨운 1학년들


상훈이는 달리기를 잘한다. 그래서 축구도 무지 좋아한다. 하지만 올해 학교에서 축구는 한 번도 해보질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뛰면 숨 쉬기가 힘들어 좀처럼 공을 차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았는데. 상훈이는 요즘 어린이집이 너무 그립다. 상훈에게 지금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일까. “호두랑 히어로요.”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이름을 댔다.

학교가 낯설고 어려운 건 다른 1학년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용인에 사는 강시원 군은 최근 “학교를 1주일에 한 번만 가니까 아쉽지”란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학교는 평일 매일매일 가는 곳이란 개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있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장난치고 논다는 말도 어리둥절해했다. 어머니 박성란 씨(38)는 “지금 아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학교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학교랑 너무 달라 대화를 풀어나가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친구 1명 사귀지 못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김윤지 양은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격. 하필 올해 봄 서울에서 이사 오는 바람에 학교에는 유치원 친구도 없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윤지는 학교 가기 전날이 되면 눈에 띄게 불안해한다.

어머니 홍정은 씨(38)는 “등교하는 아침마다 윤지가 가기 싫다고 울곤 해서 억지로 학교에 보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고민스럽다”며 “학교에서는 친구들한테 물건도 못 빌리게 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겠지만, 한창 사회성을 길러야 할 나이에 ‘친구들과 거리 두는 법’부터 배우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EBS 강의나 컴퓨터 원격 수업도 아이들에겐 쉽지 않다. 대구에 사는 권도윤 군은 최근 EBS 수업을 듣다가 묘한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엄마, 열심히 손을 들었는데 선생님이 날 시켜주지 않아.” 녹화방송이란 걸 몰랐던 도윤은 TV에 나오는 선생님도 유치원 때처럼 똑같이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던 도윤이는 이런 수업 방식으로 인해 학교에 대한 실망이 클 수도 있다.

경기 광주에 사는 이승희(가명) 양도 도무지 TV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학교에 못 가는 것도 아쉽고, 친구도 만날 수 없다 보니 자꾸 딴짓을 하기 일쑤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어”라고 했더니 “너무 답답해.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눈물짓기도 했다.

○ 가족 중심 ‘콘택트’로 위기 극복해야


아이들이 안쓰러운 건 단순히 엄마들이 느끼는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코로나 1학년’들의 학교생활에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이들이 또래와 교류하며 소통하고, 갈등이 생겨도 해결하는 방법을 체득할 시기에 전혀 그런 사회화 과정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설규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친구들과 싸운 뒤 화해도 하고 선생님의 꾸지람도 받아봐야 나름 사회적 규칙을 배우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교감이 줄어드는 건 학생들의 자존감 형성에도 차질을 빚는다. 초1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서 자신의 성격과 능력을 발견해 나간다.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8, 9세는 동료를 자기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시기다. 이 과정이 없으면,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김기전 우리두리 아동청소년발달센터 원장은 “실제로 최근 1학년 중 일부가 이를 갈거나 소리를 지르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례가 있다”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만지지 마라’ ‘나가면 안 된다’ 같은 부정어를 주로 듣다 보니 아이들에게 감정이 억눌리는 경험이 많아진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체 능력의 저하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안 그래도 바깥 활동이 줄었는데, 학교에 가도 땀 흘려 뛰어놀 기회가 없다. 수업이 비대면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시간만 길어졌다. 정성우 부산교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놀이 중심의 운동이 절실한데, TV나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니 시력도 나빠지고 거북목 증세가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낙담하지 말고 자녀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꿔볼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위기를 기회 삼아 ‘사회적 언택트(untact)’를 ‘가족 중심의 콘택트(contact)’로 바꾸는 것이다.

심미경 인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가족 간의 게임’과 ‘마주 보기’를 권장했다. 집에서 가족끼리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등으로도 아이들은 또래와 놀 때처럼 사회화를 배울 수 있다. 아빠와 엄마가 아이와 동등하게 놀이를 함으로써 수평적 관계에서 오는 소중한 체험도 줄 수 있다.

마주 보기는 표정 감정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인터넷 맘카페 등에는 ‘마스크만 쓰고 있다 보니 아이들이 타인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읽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심 교수는 “가족끼리 한자리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협상이나 역지사지의 자세 등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고 조언했다.

학교에서도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송재홍 제주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예를 들어 학교에 오지 않더라도 학원 등을 다니는 아이들과 형편상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은 적응력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장기간 불규칙한 등교로 학교 규율에 익숙지 않은 1학년들에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 다소 엄격한 학교생활이 힘겨울 수 있다. 윤현철 순천향대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등교를 재개하면 초반에 몇몇은 늦잠을 잘 수도 있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지 않을 수도 있다”며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틀에 적응할 시간을 최대한 넉넉히 줘야 한다”고 했다.
 
박종민 blick@donga.com·김태언 기자 / 김희량 인턴기자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졸업 / 조지윤 인턴기자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 이규열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수료
#코로나19#초등학교 등교#초등학교 생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