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위반’ 故지학순 주교, 46년 만의 재심서 무죄

뉴시스 입력 2020-09-17 15:11수정 2020-09-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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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유신헌법 무효"라며 양신선언문
법원 "긴급조치 위반 위헌" 무죄
내란선동·특수공무집행방해 유죄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 등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한 고(故) 지학순 주교(1921~1993)가 약 4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허선아)는 17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지 주교의 재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지 주교는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었다.

재판부는 지 주교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다만 내란 선동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지금 다시 실체 판단을 할 수 없다며 유죄 판단을 유지하면서 양형만 심리해 형을 다시 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1·2·4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현행 헌법에 비춰보더라도 위헌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범죄가 안 된다”고 무죄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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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란 선동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의 경우 지금 다시 실체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그대로 증거에 따라 유죄로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본 질서의 유지에 큰 위험성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특수공무집행방해의폭행 정도도 심하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 주교 측은 이 사건 혐의들이 모두 상상적 경합 관계이므로 실체 심리 및 판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 주교는 1974년 7월6일 김영일(시인 김지하)씨가 헌법개정운동 등을 한다는걸 알면서도 108만원을 주며 내란을 선동하고, 관련 내용을 알리지 않아 내란 선동 및 대통령 긴급조치 1·2·4호 위반 혐의로 연행됐다.

또 당시 지 주교는 주거제한 명령에도 병실 밖으로 나가려다가 이를 제지하는 공무원을 떠밀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적용됐다.

지 주교는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뒤 당시 박정희 정권의 폭압에 저항하며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됐다. 지 주교는 1973년 11월 YMCA에서 반독재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지식인 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4년 1월8일 긴급조치 1호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와 개헌논의 금지’와 2호 ‘비상군법회의 설치’를 선포했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이 국가 변란을 기도했다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배후로 지 주교를 지목했다.

지 주교는 1974년 7월6일 해외 순방 후 귀국길에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하지만 주교회의가 지 주교 지지 선언을 하자 중앙정보부는 지 주교를 이틀 만에 풀어줬다.

석방 후 지 주교는 1974년 7월23일 서울 명동 카톨릭회관 앞마당에서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발표했고, 그날 다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됐다.

지 주교는 1974년 8월9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에 전국 카톨릭 사제와 신도들을 중심으로 지 주교 석방 시국선언과 기도회가 이어졌고, 지 주교는 다음해 2월17일 석방됐다.

검찰은 지난 2018년 3월 긴급조치 1호 등이 무효이므로 재심 사유가 있다며 지 주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지 주교는 청소년 교육과 빈민 결핵치료 등을 도왔고,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에 힘을 쏟았다. 이후 지 주교는 1993년 선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0년 “긴급조치 1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유신시대 공포된 대통령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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