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위의 소를 구하라”… 마취총 쏘고 크레인으로 끌어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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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수해복구 현장
“소 한마리 땅으로 옮기는데 1시간”… 공무원-119구조대원 200명 출동
지자체-軍 수해복구 지원 총력
전남도 공무원 1000명 긴급투입, 폐사 오리-쓰레기 등 처리 구슬땀

“이제 살았어요 음매∼”… 대피소에 모인 이재민들 10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에서 폭우로 물이 차오르면서 지붕으로 피신했던 소들이 크레인 줄에 묶인 채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왼쪽 사진). 전날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이날 구례읍 구례여중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텐트를 치고 모여 있다. 구례=뉴스1
“이제 살았어요 음매∼”… 대피소에 모인 이재민들 10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에서 폭우로 물이 차오르면서 지붕으로 피신했던 소들이 크레인 줄에 묶인 채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왼쪽 사진). 전날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이날 구례읍 구례여중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텐트를 치고 모여 있다. 구례=뉴스1
축산 농가 등이 침수되는 등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에 10일 대형 기중기가 나타났다. 급류를 피해 마을 주택가 지붕에 올라간 소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원된 중장비였다. 이번 수해로 마을에서는 소 400여 마리가 유실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오전 물은 빠졌지만 지붕 위로 대피했던 소 28마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지붕 위 소 구조작전’에 구례군 공무원과 119구조대원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10일 오후 7시까지 소 16마리가 구조됐다. 이 가운데 8마리는 진정제가 든 마취총을 쏴 넘어뜨린 뒤 크레인 줄에 묶어 땅으로 내렸다. 나머지 8마리는 천천히 진정시키며 옥상과 연결된 계단 등을 통해 내렸다. 구례군 관계자는 “아직 소 12마리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 소 한 마리를 끌어 내리는 데 30분에서 1시간이 걸려 11일까지 작업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도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심각한 수해가 이어졌지만 시민과 공무원, 군부대 장병들이 힘을 모아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10일 오후 3시경 전남 곡성군 입면의 한 오리농가에서 곡성군에서 근무하는 정지영 주무관(34·여)이 마스크를 쓴 채 폐사한 오리를 끄집어내는 데 한창이었다. 이 농장에서는 이번 폭우로 오리 4만5000마리 중 4만 마리가 폐사했다. 정 주무관은 “오리 배설물 냄새가 나긴 하지만 농민들 아픔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 주무관 등 공무원 11명은 폐사에서 살아남은 오리를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 곡성군은 10∼14일 모든 직원이 여름휴가를 취소하고 수해 복구에 나섰다. 실과별로 근무해야 할 필수 인력 400명을 제외하고 100여 명이 수해 복구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남도 역시 소속 공무원 1000여 명 규모의 긴급 복구 지원반을 조직해 피해가 큰 구례, 곡성, 담양의 침수 피해 현장에 투입했다.

이날 인근 곡성군 곡성읍 신리의 한 침수 가옥에서는 육군 31사단 95연대 지원중대장 이준형 대위(27) 등 장병 30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청소를 했다. 폭우에 잠긴 가구, 냉장고 등을 밖으로 꺼내고 쓰레기를 치웠다. 이 대위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삶의 터전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 피해 복구 작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31사단은 수해 복구에 장병 800명을 투입했다.

전남 구례 지역 이재민들은 구례 북초등학교와 구례고 강당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다. 좁은 공간에 텐트 수십 개가 모여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지만 당장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달리 방법이 없다. 이재민 장모 씨(62·여)는 “보건소에서 발열 체크, 텐트 간 거리 두기를 하라고 해서 최대한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지역 자원봉사자 270여 명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급식 봉사 등에 참여했다. 또 도내 의용소방대원 720여 명이 매일 피해 복구에 참여하는 등 도내 민간단체 자원봉사 참여가 늘고 있다.

광주에서는 자율방제단원 60여 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노한봉 광주시 자율방제단장(65)은 8일 광산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폭우에 잠기자 3일 동안 양수기 9대를 이용해 물을 빼냈다. 노 단장은 “기록적인 폭우에 대처하기 위해 단원 1700명이 비상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섬진강 제방 붕괴로 침수됐던 전북 남원시 금지면 일대에는 10일 35사단 장병 150여 명, 전북지방경찰청 직원 200여 명, 남원시 새마을지도자회 30여 명 등 600여 명이 피해 복구에 참여했다. 김명환 전북경찰청 경찰기동대 팀장은 “마을 모습이 너무 처참해 가슴이 아팠다. 주민들 표정이 어두워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하루 빨리 웃음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례=이형주 peneye09@donga.com·조응형 / 정승호 기자
#수해#전남#장마#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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