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에 담은 ‘그때 그시절 신포동 골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03시 00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보섭
인천 신포동 노포-서민들 찍어
다음달 11∼19일 전시회 개최

인천 제물포고교 동문 몇몇의 모임인 ‘이화주순례단’은 매달 둘째 주 화요일마다 노포를 돌아다니며 정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5월 
신포주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 사진은 인천 중구 신포시장의 신포주점 내 수십 년 전통의 낙서벽. 김보섭 
사진작가 제공
인천 제물포고교 동문 몇몇의 모임인 ‘이화주순례단’은 매달 둘째 주 화요일마다 노포를 돌아다니며 정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5월 신포주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 사진은 인천 중구 신포시장의 신포주점 내 수십 년 전통의 낙서벽. 김보섭 사진작가 제공
40년 가까이 인천을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보섭 씨(64)는 늘 사진기를 들고 누군가를 찍는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특정 인물들을 10∼20년에 걸쳐 앵글에 담는가 하면 조찬모임, 술자리 등에서 마주친 사람이나 풍경도 열심히 찍고 있다. 그가 선택한 피사체에는 진한 추억과 그리움이 배어 있다. 고향 인천의 모습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이던 1983년 인천 중구 신포시장을 지나치다 골목 중간의 선술집 ‘백항리집’ 주방에서 졸고 있던 여주인의 모습을 몰래 찍었다. 6·25전쟁 직후 문을 연 이 집은 인천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었던 해에 동아미술제 사진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사진에 미쳐 있었다.

김 씨는 4년 전 옛 사진 속에서 백항아리집 여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인천의 얼굴이자 몸’과 같았던 신포동 일대 사람들을 제대로 기록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신포동 역사를 훤히 꿰뚫고 있는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73·시인)에게 자문해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오래된 점포) 주인과 전설 같던 주먹계의 대부, 문화예술계 인사, 이웃 서민들을 다시 찍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 찍은 사진과 간직하고 있던 신포동의 옛 사진들을 편집해 ‘신포동 사람들―그리운 옛 얼굴과 정겨운 옛 골목’이란 사진집으로 최근 펴냈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전시회인 ‘신포동 사람들’이 다음 달 11∼19일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의 한중문화관 별관 화교역사관에서 열린다. 16일 오후 3시엔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사람에게는 본향(本鄕)이 있다. 이제 원도심으로 불리는 사뭇 낡고 아득해진 중구 신포동 일대, 이 언저리가 인천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하는, 그래서 영영 그리운 본향일 듯하다.”(김윤식 시인) 사진집 서문은 이런 글로 시작한다.

사진집에는 신포시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거리 풍경, 건물, 골목길, 노포들이 등장한다. 신포동 일대에서 장사를 하거나, 손님으로 행세하던 50명 정도의 인물도 살펴볼 수 있다. 인천 레슬링계의 선구자 임배영(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리스트), 일식집 골목에서 성서교회를 열어 힘든 사람들의 반려자 역할을 하는 김태경 목사, 신포동 ‘작은 거인’ 황인생, 댄디한 복장으로 신포동 골목을 누비던 홈런바 사장 이상하,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멋쟁이 임규준, 인천 최초의 DJ 윤효중, 70년 넘은 떡 방앗간을 운영하는 이종복, 드러머 정재형, 1961년부터 41년간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성당인 담동성당 주교를 지낸 나길모, 다복집 사장 한수복, ‘영원한 신포동의 산책자’로 불리던 전 제물포고 국어교사 최승렬 등을 만날 수 있다. 연극연출가 조일도, 시인 채병성, 화가 김진안, 아동문학가 김구연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있다. 이들은 신포동에 있던 백항아리집, 신포주점, 미미집, 대동강집, 화신면옥, 화선장, 다복집, 유래, 국제다방, 은성다방에서 먹고, 마시며 삶을 살았다. 대개 10∼20년 사이에 찍은 사진들이어서 등장인물 중 고인이 많지만 생존한 사람도 꽤 있다.

사진 설명도 읽어볼 만한 게 많다. ‘신포시장의 민낯’(2002년 12월 촬영)에선 ‘재래시장의 진짜 얼굴이었는데, 사라져 버렸다. 기름집, 보리밥집, 칼국숫집, 생선가게 등이 미로처럼 얽혀 있던 곳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 씨는 “신포동을 자주 찾던 예술인들이 단골집이던 다복집, 대전집, 신포주점에서 시, 그림, 서예,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회를 세 차례 연 적이 있었다”며 “그들의 정신을 잇고 싶어 ‘신포동 사람들’이란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다큐멘터리#사진작가 김보섭#신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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