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전 아라가야 왕묘 축조술 확인, 함안 말이산 13호분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19일 14시 27분


경남 함안군과 재단법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 중 최대급 고분인 말이산 13호분과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20일 현장 공개한다.

함안 말이산 13호분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조사했으나 몇 장의 도면과 사진만 남아있을뿐 고분의 역사적 가치를 전혀 알 수 없었다.

2018년 문화재청 문화재보수정비 사업의 하나로 시작된 발굴조사 결과 그해 12월18일 중간 조사성과 공개에서 덮개석에 새겨진 남두육성·청룡별자리 등 가야 최초의 별자리와 무덤방 내 4벽면을 붉게 채색한 채색고분, 고암반대 축조기법 등이 확인됐다.

또 13호분 대형 돌덧널무덤의 축조와 관련된 특수 통로시설과 봉토를 효율적으로 쌓기 위한 중심분할 석벽 축조공법 등 아라가야 왕묘의 독창적인 토목기술을 확인했다.

북쪽의 특수통로시설은 벽석재와 부장용품 운반 및 제의공간으로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 아래로 매장이 이루어지는 돌덧널무덤에서는 처음으로 조사된 독특한 구조다.

중심분할석벽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봉토고분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조다.

대규모 암반대 조성공정에서 생성된 암반석재를 봉분축조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치 석성의 성벽과 유사하며 잔존 높이만 무려 3m에 달한다.

석벽은 정확히 돌덧널의 중심축 상부에 축조돼 있어 13호분이 치밀한 설계를 통해 축조됐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조사된 함안 안곡산성 등의 성벽 축조기술과도 유사해 당시 국가 주도 토목기술의 상호 관련성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돌덧널은 암반대 상부를 정지한 후 묘광을 굴착하고 축조했는데, 모두 14장의 덮개돌을 덮었다.특히 화강암제 등 강도가 높은 석재를 5장 정도 덮어 봉분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획했으며 덮개돌과 벽석 최상단석 사이에는 점토를 깔고 너비 10㎝ 정도의 얇은 각재를 놓아 최상단 벽석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개석의 수평을 조절한 흔적이 확인됐다.

돌덧널은 길이 8.7m, 너비 2.1m 규모로, 내부는 모두 적색안료(산화철이 포함된 석간주)를 사용해 붉게 채색한 채색고분이다.

양장벽과 남단벽에는 말이산고분군의 특징적 시설인 들보시설이 완전한 상태로 잔존하며, 들보시설 바닥면에는 나무재질의 흔적도 관찰된다. 이러한 돌덧널의 세부적인 축조기술은 앞으로 고대 기술사적 비교에서 좋은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출토유물은 1918년 약식조사 이전부터 80년대까지 상당히 많은 도굴피해로 인해 원상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지만, 북벽 아래 부장공간과 인접한 주피장자공간에서 꽤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조형미가 뛰어난 두 귀 달린 장군을 비롯한 그릇받침(통형기대·발형기대), 굽다리접시(고배) 등의 토기류와 청동제 말갖춤장식편 및 갑옷편, 금동제 투조 허리띠장식구와 비취곡옥 등이 출토됐다.

출토된 토기로 볼 때 13호분은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13호분 주변지역에서 봉분은 유실됐지만 86호분과 129호분 2기의 돌덧널무덤이 조사됐다.

86호분은 돌덧널의 길이가 6.5m로 들보시설을 갖춘 중형급의 무덤이다. 내부에서 그릇받침(발형기대), 불꽃무늬굽다리접시(화염형투창고배) 등의 토기와 화살촉, 창(철모) 등 무기류 및 말갖춤새(등자, 재갈)가 출토됐다.

129호분은 86호분보다 규모가 작지만 주구(周溝)가 시설돼 있으며 내부에서 뿔잔(각배), 굽다리항아리(대부호) 등 토기가 출토됐다.

86호분과 129호분은 13호분과 같은 시기인 5세기 후반으로 예상되며 구체적으로는 약간 늦게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3호분과의 배치관계로 보아 배장묘와 같은 성격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현장공개는 20일 오후 2시 시작된다.

[함안=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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