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투병 말기암 아내 살해한 70대…“병 수발 지치고 자식한테 미안해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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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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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소. 가망 없는 마누라 병 수발도 지쳤고 자식한테도 미안해서….”

29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의 한 주택. A 씨(79)가 체념하듯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만큼 힘이 없었다. 앞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집에 드나들고 의사가 아내 B 씨(79)의 시신을 살필 때도 그는 그저 방에 누워 있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15분경 A 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출동 당시 A 씨도 방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안정을 찾도록 도운 뒤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시신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B 씨의 목을 누군가 손으로 누른 흔적이 발견되자 남편을 추궁했다. 경찰은 A 씨의 진술과 시신 상태로 미뤄 이날 오후 3시경 범행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화목했던 동갑내기 부부에게 그림자가 드리운 건 20년 전부터다. 30일 부산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숨진 B 씨는 20년 전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당시 A 씨는 학교 행정직원으로 정년퇴임을 한 뒤였다. 그는 아픈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며 정성껏 간호했다. 하지만 이식한 심장판막이 수명을 다한 5년 전부터 B 씨의 건강이 더 나빠졌다. 고령인 탓에 심장판막 재수술을 하지 못해 합병증 치료만 받았다. 그러던 중 올 4월 B 씨는 통증이 무척 심한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B 씨는 입원한 종합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2, 3주 뒤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내 남편에게 “집에 있고 싶다”고 했고 A 씨는 집에서 병간호를 시작했다. 딸과 두 아들은 아픈 어머니와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자주 찾아왔다. 미혼인 막내아들(50)은 아예 부모를 돌보려고 집에 들어왔다.

A 씨는 범행 후 자녀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네 엄마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놀란 자녀들은 119에 전화를 걸어 “몸이 아픈 어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는데, 빨리 출동해 달라”며 신고했다. 경찰은 30일 B 씨를 부검해 정확한 사망 원인과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A 씨에 대해 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목 졸림 흔적 이외에 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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