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하면서 어려움 극복하고 올바른 인성과 공동체 의식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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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캡스톤 데이

지난달 17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에서는 이 학교 8학년 학생들의 ‘캡스톤 데이’가 진행됐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가상의 회사를 창업하고, 제품을 개발한 뒤 사업계획안을 발표했다. 발표회가 열리기 전, 소강당에서 학생들이 제품 시연회와 설명회를 가졌다. 서귀포=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지난달 17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에서는 이 학교 8학년 학생들의 ‘캡스톤 데이’가 진행됐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가상의 회사를 창업하고, 제품을 개발한 뒤 사업계획안을 발표했다. 발표회가 열리기 전, 소강당에서 학생들이 제품 시연회와 설명회를 가졌다. 서귀포=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이 ‘재난 가방(Disaster kit)만 있으면 아이들이 재난 상황에서 쉽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어린이용 재난 가방을 전문으로 만듭니다. 가격도 시중보다 저렴한 30달러에 책정했습니다.”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앙증맞은 모자, 랜턴, 식수통, 망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 가방. 채우리 양(15)과 유하나 양(15)이 올 상반기 내내 공들여 만든 제품이다. 두 사람은 청중을 상대로 진지하게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여느 기업들의 사업설명회가 아니다. 지난달 17일 제주 서귀포 대정읍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대강당에서 열린 학생들의 발표회 풍경이다. SJA Jeju는 제주영어도시 안에 설립된 첫 번째 미국 국제학교다.

이날은 이 학교의 ‘캡스톤 데이’였다. 1학기 동안 진행한 ‘캡스톤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날. 이 학교 8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 학생 전원이 팀을 짜서 가상으로 회사를 창업하고, 신제품을 만들어 공개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는 ‘캡스톤’ 프로그램

발표회가 시작되기 전, 소강당에서는 제품 시연회가 열렸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300여 명이 소강당을 가득 채웠다. 학생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시연하고 장점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부분의 국내 학교에서는 교사가 과제를 내주고 학생은 이를 이행한다. 캡스톤 프로그램은 다르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도 직접 찾아야 한다. 교사들은 멘토 역할에 그친다. 미국 SJA 본교에서 고등부 졸업생(12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시니어 캡스톤’에서 착안했다.

현재 SJA Jeju는 초·중·고등부의 마지막 학년인 5, 8, 1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캡스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따로 학점이 부여되지는 않지만 필수 과정 중 하나다. 학년별로 수준에 맞춰 주제 선정과 연구 과정, 발표 형식을 달리한다. 이 학교는 내년에 처음 고등부 졸업생을 배출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초등부와 중등부 캡스톤 프로그램만 운영하고 있다.

중등부 캡스톤 프로그램의 주제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학생 2, 3명이 한 팀을 이뤄 한 학기 동안 가상의 창업 프로세스를 밟는다. 올해의 경우 21개 팀이 꾸려졌다. 학생들은 각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자금관리이사(CFO), 마케팅관리이사(CMO) 역할을 맡았다.

팀원들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사업 아이템을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된 자료 조사도 직접 수행한다. 사업 아이템이 결정되면 브랜드를 개발한다. 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특징을 부각시킨다. 그 다음에는 마케팅 전략을 짜고 수익성을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에 대한 동영상 광고도 직접 제작한다.

발표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된다. 학생들은 사업계획과 신제품 홍보를 이 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 물론 모든 발표는 영어로 진행된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회사’는 ‘SSS(Sally Sophia Stationery)’였다. 팀원인 신하서 양(15)과 이은주 양(15)의 영어 이름과 문구용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쳐 회사명을 만들었다. 두 학생은 “가죽과 금속 재질을 사용했으며 친환경적인 소재,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점 등을 내세웠다”며 강점을 부각시켰다.

환경을 생각하고 최근의 구독 경제 흐름을 반영한 제품도 등장했다. 공하영 양(15)과 신다현 양(15)이 세운 ‘리프레션(Re:Freshion)’이라는 회사의 제품이 대표적이다. 두 학생은 입던 옷을 수거해 재가공한 뒤 대여하는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8벌이 든 한 상자를 한 달 동안 대여하는 가격을 8만 원으로 책정했다. 두 학생은 “직접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벌여 적정한 가격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등에 메는 가방의 지퍼가 저절로 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잠금장치, 식물성 비누, 간편하게 메는 넥타이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제품이 적지 않았다.

‘스타트업 체험’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

학생들의 발표에는 사업과 관련된 내용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학생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도중에 느꼈던 어려운 점, 새로 깨닫게 된 점도 발표했다. 공 양과 신 양은 “패션 사업을 해 보자고 기획한 후에 시장 조사를 하면서 꽤 어려웠다. 사업하는 것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았다. 신 양과 이 양은 “우리가 직접 사업 플랜을 짜고 다른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당당히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전문가의 눈에는 학생들이 내놓은 사업 아이템의 시장성이 높지 않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직접 사업가를 양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SJA Jeju 중등부 매슈 리슈먼 교장은 “1학기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협동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쳐 최종 발표까지 성공했다. 이제 학생들은 또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SJA Jeju는 지난달 31일에는 초등부 캡스톤 데이도 열었다. 초등부의 캡스톤 주제는 매년 바뀐다. 다만 환경, 기아, 인권 등 공동체 의식과 관련된 이슈를 주로 다룬다. 올해의 경우 유엔이 발표한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가 주제다. 빈곤 퇴치, 사회 양극화, 지구 환경 파괴 등에 대처하기 위한 17개 소주제가 포함돼 있다.

초등부의 경우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개인이 단독으로 진행하거나 소규모 그룹으로 진행한다. 다만 발표는 단독으로 한다. 노트북, 태블릿, 팸플릿, 설문조사, 퀴즈 등 학생들이 발표 방식을 선택한다.

캡스톤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올바른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게 목표라고 학교 측은 밝혔다. 실제로 중등부의 한 팀은 제주 지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현지 노인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내겠다고 했다. 지역 사회의 문화를 기록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별도로 여러 팀이 사업 수익을 낼 경우 일부를 환경 단체나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피터 토스카노 SJA Jeju 총교장은 “캡스톤 프로그램은 단지 학생들의 탐구 능력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제를 선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작게는 지역 공동체, 넓게는 국가와 국제 사회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올바른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서귀포=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du+#에듀플러스#교육#sja 제주#캡스톤 데이#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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