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위해 직장도, 노후 대비도 포기” 난임부부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6일 2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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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 씨(38·여)는 15년간 다닌 회사를 곧 그만둘 예정이다. 결혼 8년차지만 임신이 안 돼 아이 갖기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2013년부터 6차례 체외수정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난임 관련 치료에 쓴 돈만 4000만 원이 넘는다. 남편 사업이 어려웠을 땐 치료비를 대느라 친정에 손을 벌리기도 했다.

그 사이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다보니 자궁과 관절에 무리가 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아이를 갖겠다는 희망만은 버릴 수 없었다. 김 씨는 “엄마가 되기 위해 직장도, 노후 대비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난임 부부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난임 시술 지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20만 명이 넘는 난임 환자들에게 정책 체감도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7년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했지만 시술 종류에 따라 지원 횟수가 정해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직장 내 난임 휴가 및 휴직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26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토론방에는 이런 문제를 개선해 달라는 난임 부부의 청원이 1만5000건 가까이 올라 있다.

비싼 난임 치료비는 가계를 짓누른다. 건강보험은 시험관 시술 7회(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3회 등 총 10회에 한해 지원된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아도 체외수정 본인부담금은 102만~114만 원에 이른다. 검진비, 약값 등을 더하면 많게는 2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예상치 못한 염색체 검사나 후유증 치료까지 받게 되면 경제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올해부터 난임 시술의 비급여 지원을 늘렸다. 기존에는 신선배아 시술 4회까지 1회당 최대 50만 원을 지원했다. 여기에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3회가 추가됐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원을 10번 모두 받는 여성은 드물다.

8번째 난임 시술을 준비 중인 이모 씨(42)는 난소 기능이 떨어져 동결배아 시술을 받을 수 없다. 이 씨는 “여성의 몸 상태는 사람마다 다른데 획일적으로 시술별 횟수를 정해놓다 보니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동결배아 3회 시술을 신선배아 1회로 바꿔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자 몸에 잘 맞는 시술을 집중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임 치료를 받다보면 회사에 눈치가 보여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적지 않다. 난임 휴가나 휴직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시술 때마다 보통 5~7회 정도는 병원에 다녀야 하는데 난임 휴가 일수는 1년에 3일로 제한돼 있다. 정모 씨(37)는 “난자를 채취하고 바로 출근했다가 복수가 차오르고 빈혈이 와 길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난임 부부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체외수정 시도가 5회를 넘어가면 출산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고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며 “건강보험 재정의 투입 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난임 정책이 보다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시술 전 진단비용 등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 프랑스는 난임 시술 지원횟수가 10회로 우리나라와 같지만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권황 분당차병원 난임센터소장은 “난임 상태에 따라 중증도를 평가해 지원 방안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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