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의 바람은 중증환자가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받는 것”

  • 뉴스1
  • 입력 2019년 2월 8일 11시 15분


응급의학 전공의 동기 허탁 교수가 기억하는 윤한덕 센터장
“삶에서 응급의학 외에 없는 진보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였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윤 센터장은 전남의대 졸업 이후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 당시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해 밤낮없이 환자를 돌봐왔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한 인물로 꼽힌다. © News1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윤 센터장은 전남의대 졸업 이후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 당시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해 밤낮없이 환자를 돌봐왔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한 인물로 꼽힌다. © News1
“가슴이 찢어집니다.”

8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허탁 응급의학과 교수(55)의 목소리는 깊게 잠겨 있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긴 탄식 끝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상당한 진보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였어요.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진보주의자, 현실에 문제가 있으면 당장 뜯어고쳐 이상적으로 가야 한다는 이상주의자였죠.”

허 교수는 설 연휴 근무 중 숨진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51)과 막역한 사이다. 허 교수는 전남대 의대 82학번으로 윤 센터장보다 4년 선배이지만, 응급의학전공의로는 동기다.

허 교수와 고인은 대학 졸업 후 1994년 응급의학전공의 1기로 만나 응급의료 발전을 위한 공감대를 함께 하며 친분을 가졌다.

허 교수는 윤 센터장을 “의과대학 다닐 땐 꽃미남에 말수가 별로 없던 후배”로 기억했다. 응급의학전공의 과정에서는 “스마트하고 능력있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으로 회상했다.

허 교수는 “한덕이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가면서 기어이 해내는 완벽주의자였다”며 “자신이 원칙적으로 일을 하고 완벽히 하려 했고, 주위 사람에게도 완벽하게 일하는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그 친구의 성향이 응급의료센터에 잘 맞았고 일을 하면서 온전히 그 성향과 성격을 쏟아내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윤 센터장이 다른 의료 분야보다 열악한 응급실 문제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고 전했다.

허 교수는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던 그가 가장 바라던 것은 응급실에서 중증의 환자들이 기다리지 않고 제때 치료받게 하는 것이었다”며 “응급실에서 몇 명의 환자를 잘 치료하기보다 응급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선진국형 체계로 개선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와 윤 센터장은 2002년 한국 의료계 현실을 바꾸기 위해 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들어갔다.

허 교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일하는 사람이 3~4명밖에 안 된다”며 “거기서 일하는 의사들은 삶의 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한덕이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처럼 살았다”며 “6년간 응급실에서 뼈저리게 느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개선안을 주도해 추진했다”고 말했다.

응급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인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과 이를 토대로 한 응급의료기관 체계 정립과 평가,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응급의료종사자 교육·훈련 등을 추진했다고 한다.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허탁 교수. © News1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허탁 교수. © News1
허 교수는 “이국종 교수가 책 ‘골든아워’의 ‘윤한덕’ 편에서 ‘대한민국의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썼는데, 실제로 한덕이의 삶에서 ‘응급의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덕이는 중앙응급의료센터 직원이 해온 자료와 서류를 밤새 수정하고 새로운 계획을 직접 기획했다”며 “그가 자기 집에 머무른 시간은 일요일 저녁 몇 시간뿐이었고 난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밤에는 자고, 주말에는 운동하고, 일 년에 한번이상 제대로 휴가를 가라고 사정했지만 그는 시시때때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응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사무실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는 한덕이의 진보적인 노력은 변화에 소극적인 기득권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며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고 전했다.

허 교수는 윤 센터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한국 의료계가 많이 개선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20년 전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체계가 좋아졌다면, 국가와 국민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지난 4일 오후 6시쯤 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에 내려갈 예정이었으나 연락이 두절되자 윤 센터장의 아내가 병원을 찾았고 직원들과 함께 숨진 윤 센터장을 발견했다.

그는 명절 전 일주일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인이 숨진 날까지 전국 응급의료기관의 운영현황, 외상센터 개선방안, 설 재난 대비 비상연락망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7일 1차 부검결과 윤 센터장의 사망 원인이 고도의 관상동맥경화로 인한 급성심장사라고 밝혔다. 최종 부검 결과는 향후 약물 검사 등을 통해 나올 예정이다.

고 윤한덕 센터장의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부터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치러진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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