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도우미로 맹활약… 나누며 커가는 다문화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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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賞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8회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손가락과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천즈, 김미화, 렛셍희영, 류희정 씨, 김승범, 이창민 군, 김정림, 하라 미치코, 임병우 씨, 
대전 이주외국인 무료진료센터 김재홍 국장, STX복지재단 이기연 이사장.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8회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손가락과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천즈, 김미화, 렛셍희영, 류희정 씨, 김승범, 이창민 군, 김정림, 하라 미치코, 임병우 씨, 대전 이주외국인 무료진료센터 김재홍 국장, STX복지재단 이기연 이사장.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다문화가족 부문

대상 받은 중국 출신 천즈 씨, 중국어 통역하며 한국 적응 도와


“생각지도 못한 대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 손을 가슴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말한 중국 출신 천즈 씨(44·여)는 네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는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賞)’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감격스러워했다.

올해로 8회를 맞은 ‘LG-동아 다문화상’은 우리사회에 잘 정착한 다문화가족과 그들을 도운 숨은 공로자를 발굴해 격려하는 상이다. 다문화공헌상을 받은 서울 청량고 임병우 교사(59)는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 당당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힘차게 살아가길 바란다”며 다문화가정을 응원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날 시상식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이자스민 한국문화다양성기구 이사장, 동아 다문화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성상환 서울대 교수,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주간 등이 참석했다.

진 장관은 “열린사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다문화가족들이 잘 안착하고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다양한 인종이 어울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상을 수상한 천즈 씨는 2006년 남편 김태영 씨(48)를 만나 중국에서 결혼했다. 한국어를 몰랐던 천즈 씨는 남편의 나라로 오면서 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도움을 청할 곳을 몰라 일주일 내내 집에서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경기 수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한국어 교육을 받으며 삶이 달라졌다.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자 한국직업전문학교에서 요리와 컴퓨터를 배웠다. 2013년부턴 자신처럼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을 위해 중국어 통역사로 나섰다. 현재는 이주여성 사회적응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우수상을 받은 렛셍희영 씨(29·여)는 모국 캄보디아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했다. 남편 손현수 씨(43)를 만나 2011년 한국으로 왔을 땐 음식과 문화, 생활습관 등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렛셍희영 씨는 좌절하지 않고 서울 성북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통역을 제공하고 법률정보를 안내하고 있다.

우수상 수상자인 중국동포 김미화 씨(43·여)는 중국에서 남편 백수현 씨(54)를 만나 2004년 중학교 교사 일을 접고 한국에 왔다. 처음엔 건강보험료가 2년 넘게 밀릴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배 속 아이와 남편을 지키기 위해 중국어학원에 이력서를 냈다. 현재는 중국어 강사와 통·번역사, 사회복지사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문화가족상 특별상의 주인공은 필리핀 출신 류희정 씨(39·여)다. 2006년 결혼한 남편 류창문 씨(64)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뒀다. 결혼 초기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한국어를 독학했다.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 다문화공헌 부문

14년간 34개국 1만7861명 무료 진료 ‘다문화 슈바이처’

다문화공헌상 개인부문 수상자인 하라 미치코 씨(51·여·일본 출신)는 1999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줄곧 한국에서 살고 있다. 시동생의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져 전단을 돌리는 등 힘든 시기를 겪었다. 경기 남양주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접한 뒤 2013년부터 결혼이민자 서포터스 단장을 맡는 등 하라 씨의 삶은 달라졌다.

또 다른 개인부문 수상자인 김정림 씨(46·여·중국 출신)는 누구보다 흥이 넘친다. 하지만 그도 남편의 두 ‘친딸’과 갈등을 겪는 등 타국에서 외롭고 고된 생활을 했다. 김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결혼이주여성을 돕기 위해 국립제주박물관 통·번역 및 문화해설사라는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나와 ‘제주글로벌센터’를 세웠다.

서울 청량고 임병우 교사(59)는 2008년 이웃에 살던 몽골인 가족이 불법체류자로 쫓겨나는 모습을 본 뒤 다문화동아리를 만들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열고, 전국 최초로 교육과정에 다문화 이해교육을 도입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 공헌상 개인부문 수상자가 됐다.

공헌상 단체부문을 수상한 대전 이주외국인 무료진료센터는 2005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로 외국인들을 진료하고 있다. 그동안 센터를 거쳐 간 외국인이 34개국 출신 1만7861명에 이른다. 이곳에선 의료인 500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단체부문 공동 수상자인 STX복지재단은 2007년부터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의 고향 방문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930여 명이 이 재단의 도움으로 모국을 찾았다. 2010년부터는 지역주민과 이주민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주민 다문화 축제를 열고 있다.

● 다문화청소년 부문

따돌림 극복하고 보디빌더 꿈 쑥쑥


다문화청소년상을 수상한 김승범 군(19·정남진산업고 3학년)의 하루는 오전 6시 헬스장에서 시작된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김 군은 4년 전부터 트레이너의 꿈을 키웠다. 올해 4월 전국 고교보디빌딩대회 60kg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 군은 어릴 적 작은 체격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근력 운동에 취미를 붙이며 삶이 180도 달라졌다. 처음엔 부모님이 운동을 허락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헬스장에 다닐 돈을 마련했다. 불판을 닦는 것도 근육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김 군을 보며 부모님도 차츰 “그렇게 먹어서 되겠냐”며 닭가슴살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보디빌더가 목표인 김 군은 최근 서울 소재의 한 전문대 스포츠건강학과에 합격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이창민 군(18·대구세명학교 고등부 3학년)은 다섯 살 때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가 중국 출신인 이 군은 중학교 2학년 땐 친구들과 갈등을 겪어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특수학교인 대구세명학교로 옮긴 뒤 같은 상황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고속철도(KTX) 기관사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이 생긴 뒤에는 교내 로켓대회에서 두 차례나 입상할 정도로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올해 6월부턴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히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제3차(2018∼2022년)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에 김 군과 이 군처럼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 다문화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담았다. 다문화청소년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이중언어 능력을 활용해 이들의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 사회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조선경 여가부 다문화가족과장은 “다문화가정의 자녀 대다수가 초등학생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도입기’에 머물렀던 정책을 ‘정착기’로 맞춰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 동아 다문화賞 수상자

▽가족상
―대상: 천즈 씨 가족(경기 수원시 중국 출신)
―우수상: 렛셍희영 씨 가족(서울 성북구 캄보디아 출신), 김미화 씨 가족(경남 창원시 중국 출신)
―특별상: 류희정 씨 가족(경북 영덕군 필리핀 출신)

▽공헌상(개인)
하라 미치코 씨(남양주시 다문화가정 서포터 일본 출신), 김정림 씨(제주글로벌센터 사무처장 중국 출신), 임병우 씨(서울 청량고 교사)

▽공헌상(단체)
STX복지재단(다문화가정 고향 방문 지원), 대전 이주외국인 무료진료센터(의료 봉사)

▽청소년상
김승범 군(정남진산업고 3학년), 이창민 군(대구세명학교 고등부 3학년)

김하경 whatsup@donga.com·조건희 기자·박은서 기자 clue@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동아 다문화상#다문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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