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혈증 의심 환자 20명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A피부과의원 측이 5개월 전 고장 난 냉장고에 프로포폴 주사기를 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A피부과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이미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진술했다. 냉장 기능이 없는 무용지물이었지만 피부과 직원은 어린이날 연휴 전날인 4일 프로포폴을 나눠 담은 주사기 20여 개를 이곳에 보관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7일 시술에 사용했다.
피부과 관계자는 “평소에는 토요일 진료를 앞두고 금요일에 미리 준비를 해놓는다. 이번에는 토요일(5일)이 휴일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4일 준비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A피부과 원장 박모 씨(43)를 출국금지하고 이 같은 프로포폴 관리가 상습적으로 이뤄졌는지 조사 중이다.
프로포폴 부실 관리로 인한 사건·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미리 주사기에 나눠 담은 뒤 일정 시간 보관하는 건 관행이라는 게 의료계 종사자의 증언이다. 최근 1년간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에서 일한 김모 씨(40·여·간호조무사)는 “프로포폴을 개봉해 쓰고 남으면 주사기에 담아 보관했다”고 털어놨다. 프로포폴을 앰풀에서 주사기에 옮기려면 5분가량 걸린다. 미리 담아 놓으면 환자가 몰릴 때 시술시간을 줄일 수 있다.
프로포폴에는 지방질 성분이 있고 항균제가 포함돼 있지 않아 공기와 접촉하면 세균이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도난과 남용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2011년 인천의 한 내과에서는 간호사가 없는 틈을 타 환자가 프로포폴 앰풀 15개를 훔쳐 달아났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에 따라 향정신성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은 반드시 잠금장치가 있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잠금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곳이 많다.
10일 찾은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도 냉장고 잠금장치를 열어놓은 채 프로포폴을 사용 중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이중 잠금장치를 설치했지만 매번 열고 닫기가 번거로워 처음 한 번 열어놓고 다시 잠그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전보다 비용을 신경 쓰는 의료계 인식을 문제로 꼽았다. 서구일 서울대 의대 연구교수(피부과)는 “프로포폴 50mL 한 병에 8000원이다. 큰돈이 아닌데도 이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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