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진 “동아일보 배달하며 청운의 꿈 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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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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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진 백암재단 이사장
30년 넘게 사회공헌사업 구슬땀
성인 정규 중고교 과정 개설… 31일 국민포장 받아

윤국진 백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2016년 9월 남인천중고교 성인반이 참가한 추석 특집 KBS ‘도전 골든벨’에서 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백암재단 제공
윤국진 백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2016년 9월 남인천중고교 성인반이 참가한 추석 특집 KBS ‘도전 골든벨’에서 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백암재단 제공
윤국진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이사장(73)은 왼 손목에 난 흉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10대 시절 인천에서 동아일보를 배달하다가 개에게 물린 상처다. 24일 동아일보와 만난 윤 이사장은 옷소매를 걷어 올려 흉터를 보여주며 60년 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13세 때 홀어머니를 충북 괴산에 남겨 두고 마을 어른께 기차 삯을 빌려 인천으로 혼자 왔어요. 1957년 당시 동아일보 인천지국은 동인천 1곳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신문 배달을 하며 고학을 시작했지요.”

그는 생계를 잇기 위해 낮에 석간(夕刊)이던 동아일보 배달을 했고 새벽에는 우유 배달, 오후에는 구두닦이 등 ‘스리 잡(three jobs)’을 뛰었다. 책을 사보려고 통금시간까지 찹쌀떡, 메밀묵, ‘쇼빵’(일본식 식빵)을 담은 통을 메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끼니를 때울 돈이 없어 물을 마셔가며 3년 넘게 이런 생활을 하다가 영양실조로 길에서 졸도하기도 했다.

이런 처지의 그를 딱하게 여긴 독지가의 도움으로 운수회사에 취직했다. 월급을 모아 꿈에 그리던 야간 중고교를 다녀 졸업한 뒤 바로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펜팔을 하던 인천시청 여직원과 결혼했다.

“결혼 전 모아둔 50만 원을 밑천 삼아 중구 신포시장에서 메리야스(내복) 상점을 차렸어요. 월남 청룡부대처럼 승승장구하고 싶은 마음에 ‘청룡상회’라고 했지요.”

그 이름대로 ‘88라이롱’이라는 내복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어느덧 상점을 매입해 의류백화점으로 성장시켰다. 나들이도 없이 아내와 장사에만 열중하다 보니 구두쇠 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갈고닦는 데 쉼이 없었다. 인하대 건국대 중앙대에서 기업경영, 교육행정, 사회복지 야간과정을 이수했다. 1970, 80년대는 법무부 갱생보호위원으로 재소자를 위한 활동도 열심히 했다. 재범 방지를 위해 무료 합동결혼을 제안해 실현시켰다.

인천은 윤 이사장에게 운명의 땅이었다. 인천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결혼했고 사업에 성공해 모은 재산을 출연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한 사회공헌사업을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 법인은 인천종합사회복지관과 근로청소년 및 글을 읽지 못하는 성인을 위한 남인천중고교, 백암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 인천 사설 1호 인천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한 뒤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을 비롯해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부부를 위한 ‘한마음 합동결혼식’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25회에 걸쳐 230쌍의 무료 합동결혼식을 주선했다.

윤 이사장은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길을 포기한 근로청소년을 위한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1984년 전국 근로청소년 3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 이상이 중졸 이하라는 기사를 보고는 어렵게 마련한 중구 차이나타운 2층 건물을 남인천새마을학교에 쾌척했다. 가정집을 교실과 기숙사로 개조해 근로청소년들에게 미용, 조리 등 진로 지도를 했다. 1986년 문교부(현 교육부)로부터 학력인정 교육시설로 지정돼 지난해까지 약 8000명이 졸업했다. 1999년에는 만학도 성인을 위한 1년 3학기제 중고교 과정도 개설했다. 지난해까지 약 5700명의 성인 학생을 배출했다.

그는 2003년부터 실직자와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다. 1991년 시작한 경로잔치를 2007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백암한마음축제’로 확대해 매년 한 차례 열고 있다.

윤 이사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31일 국민포장을 받는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윤국진#백암재단#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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