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아남은 동생, 이틀째 병실 창밖만 멍하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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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죽음 전해 듣고 망연자실
국군병원 안치된 40대 원사 부인… “광어 잡아올게 한잔하자더니” 눈물

“내일 저녁에 광어 잡아 올 테니 같이 술 한잔 하자.”

현직 육군 원사 유모 씨(47)가 3일 0시 무렵 경기 시흥시 자택을 나서면서 아내 박모 씨(55)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유 씨는 이날 오전 6시 바다낚시를 떠나는 선창1호에 타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당초 오전 1시에 출발하려다가 아내가 잠에서 깰까 봐 1시간 일찍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떠난 유 씨는 군 후배 이모 씨(36)를 차에 태우고 영흥도로 향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돌아왔을 때는 싸늘한 시신이 돼 있었다.

4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 씨는 남편의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하다 쓰러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낚시 애호가’인 유 씨는 전날 미리 항구로 이동한 뒤 차에서 잠을 자고 좋은 낚시 자리를 선점하려고 했다. 함께 낚시를 떠났던 이 씨와는 취미가 같아 더욱 각별했다. 박 씨는 “남편이 이 씨와 ‘낚시 한번 가자’며 통화하는 걸 자주 들었다”며 “평소 낚시를 떠날 때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고 직접 구입한 고급 구명조끼도 입고 갔다. 이렇게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 씨 부부는 내년 2월 함께 일본 여행을 가려고 했다. 유 씨가 10월 20일 원사로 진급하면서 포상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함께 여행을 떠나지는 못했다. 여덟 살 차이의 연상연하인 이 부부는 금실이 매우 좋았고 6년 동안 반려견 ‘땅콩이’를 함께 키웠다. 아내는 남편이 생각날 것 같아 당분간 자택에 들어가지 않고 동생 집에서 지낼 참이다. 남편이 아꼈던 땅콩이도 당분간 멀리하겠다고 했다. 땅콩이를 보면 매일 출근 전 땅콩이에게 뽀뽀를 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유 씨는 병사들을 친자식처럼 아꼈다. 사고 발생 2주 전에는 고기 30근을 직접 삶아 김치와 함께 군 후배들에게 먹였다. 그의 집에는 후배들에게 주려고 사놓은 감 두 상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유 씨와 함께 근무했던 군인 50여 명이 25인승 버스에 나눠 타고 와서 조문했다. 육군 관계자는 “병사들이 서로 주임원사 빈소에 가겠다고 했다. 같이 와서 조문할 병사를 정하느라 애먹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A 씨는 4일 수도권의 한 병원 침대에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그는 전날 선창1호를 탔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환자들은 스마트폰이나 TV로 뉴스를 시청했지만 A 씨는 뉴스 자체를 멀리하고 있다고 한다. A 씨는 사고 당시 친형과 같이 선실에 있었다. 형이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이날 친형의 빈소가 수도권 다른 병원에 차려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당분간 이 병원에 남기로 했다. 병원 관계자는 “아직 형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남=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낚시배#전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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