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좁은데다 레이더 잦은 오류… “큰 배가 지름길 온게 화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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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낚싯배 전복]사고 난 영흥수도 직접 항해해보니

“자, 잘 보세요. 이상한 게 나타날 겁니다.”

4일 오후 1시 10분경 인천 옹진군 영흥도 진두항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다에서 6t급 낚싯배의 선장 원모 씨(55)가 조타실 레이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전날 선창1호가 명진15호에 들이받혀 전복된 곳에서 불과 300m 거리다.

원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흑백 액정 모니터 곳곳에 검은색 점이 발견됐다. 지름이 1cm 정도 크기였다. 이 레이더는 지름 30cm의 부표도 포착한다. 모니터 속 음영은 상당히 큰 배나 장애물을 뜻한다. 레이더 속 음영이 있을 만한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눈앞에는 바다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 레이더 오류에 아찔한 사고 위험

원 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근처 해상 송전탑과 전선이 큰 장애물인 것처럼 잘못 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낙 좁은 수로인 데다 대형 선박도 자주 다녀 레이더 역할이 크지만 이런 오류 탓에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다른 낚싯배 선장 김모 씨(62)도 “해가 뜨기 전에 출항하면 레이더에 잡힌 대형 선박을 다른 장애물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은 강했다. 파고가 2m로 높았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자 배 오른쪽으로 가로로 길게 펼쳐진 바위 끝이 보였다. 선장들이 ‘여편여’라고 부르는 ‘간출암(干出巖·썰물바위)’이다. 썰물 때 모습을 드러냈다가 밀물 때 수면 아래로 내려가 암초가 된다. 사고가 일어난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 영흥수도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겉모습은 넓어 보이지만 실제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가장 좁은 곳은 약 370m에 불과하다. 그래서 ‘협수로(狹水路)’로 불린다.

영흥도 선주들은 급유선이 운항비용을 아끼려 좁은 해로를 이용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선주들은 “인천항에서 평택항까지 갈 경우 영흥수도를 이용하면 다른 경로로 가는 것보다 운항시간이 절반 가까이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흥수도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약 18m. 대형 선박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밀물 때에 맞춰 운항에 나선다. 대형 선박이 어두운 밤에 조명을 많이 켜지 않고 운항하면 멀리 있는 낚싯배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낚싯배 선장 이모 씨(64)는 “그나마 급유선은 항해등을 희미하게 켜고 다니지만 모래운반선이나 바지선은 크기도 엄청나고 아예 조명이 없는 경우가 많아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 해양수산부, ‘협수로 안전 강화’

선박 운항의 안전 및 질서 유지에 필요한 사항은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선박입출항법)로 규정된다. 이 법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장관은 선박 교통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해당 수로를 ‘항로’로 지정할 수 있다. 항로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원칙적으로 다른 선박과 나란히 갈 수 없다. 당연히 추월도 안 된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인천해양청)에 따르면 영흥수도는 항로가 아니다. 따라서 선박입출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워낙 소형 선박의 운항이 많다 보니 인천해양청은 선박통항규칙을 통해 예외적으로 영흥수도 관련 조항을 만들었다. ‘서로 마주칠 우려가 있을 경우 속도를 충분히 줄여 폭이 충분히 넓은 곳에서 교차하라’는 내용이다. 인천해양청 관계자는 “해경 수사 결과와 구체적인 원인 분석이 끝나면 해사안전법상 충돌 위험 방지 조항 등을 준수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이날 진두항을 찾아 관련 규정을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김 장관은 “준설이나 항만 확장 등 안전 강화를 위한 사회간접자본(SOC)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좁은 수로에 작은 어선과 큰 배가 함께 다니는 안전 사각지대에 대한 통행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낚싯배 안전규정 정비도 시급

인천에 등록된 어선 1600여 척 중 낚시영업을 신고한 선박은 267척이다. 수도권에서 바다낚시 명소로 자리 잡은 인천 연안부두와 남항부두 일대에는 낚싯배 점포가 몰려 있다. 4일 찾은 ‘S낚시’의 경우 내년 1월 말까지 주말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다. 평일 예약만 가능했다. 이 점포에서는 쾌속보트에 낚시객을 태운 뒤 3, 4시간 운항해 특정 해역 근처 공해까지 나간다.

낚싯배는 20∼25년 선령 제한에만 걸리지 않으면 시설 개선이나 영업 구역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여객선이나 화물선에 비해 낚싯배는 선주나 선장을 대상으로 한 위기 대응법이나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한 낚싯배 선주는 “국제적으로는 13명 이상의 승객을 태울 때 까다로운 안전규정을 준수하도록 한다. 낚시어선도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2명까지 허용된 승선 인원과 안전관리 규정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영흥도=권기범 kaki@donga.com / 인천=박희제 기자
#낚싯배#전복#사고#영흥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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