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5·18 역사왜곡 결정판인 ‘전두환 회고록’ 반드시 바로잡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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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정인기 변호사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의 법률대리인인 정인기 변호사가 24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회고록에 있는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겠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의 법률대리인인 정인기 변호사가 24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회고록에 있는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겠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4일 오후 3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낙엽이 세찬 바람에 날렸다. 꽤 추운 날씨였지만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참배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5·18민주묘지 앞에 선 정인기 변호사(46·사법연수원 39기)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2013년부터 5·18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법률대리인으로 5월의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 왔다. 그의 마음이 무거운 까닭은 5·18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됐지만 아직까지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 의혹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미완의 역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묘지를 둘러보면서 “5·18 역사 왜곡의 결정판인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운동권 출신 인권변호사

광주가 고향인 정 변호사는 광주 효동초등학교 3학년 때 5·18을 경험했다. 그가 살던 중흥동 평화시장 부근에는 5·18 당시 계엄군 총격으로 숨진 임신부인 최미애 씨(당시 23세)의 친정이 있었다. 임신 8개월이던 최 씨는 1980년 5월 21일 남편을 마중하러 집을 나섰다가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정 변호사는 이웃인 최 씨의 친정 가족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5·18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고 느꼈다.

광주 동신중과 숭일고를 졸업하고 1990년 전남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캠퍼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학생운동이 거셌던 시기였다.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던 그는 경영대 학생회에서 활동하다 1994년에는 전남대 총학생회 정책위원장으로도 일했다.

정 변호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그는 대학 후배들과 집회를 벌이다 시국사범으로 구속돼 3개월 동안 광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교도소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콩나물시루였다. 부도가 난 자영업자, 생계형 절도범이 넘쳐났다. 11.4m²(약 3.45평) 크기의 좁은 감방에서 재소자 21명이 생활하기도 했다. 방이 너무 비좁아 서로 포개 잠을 잘 정도였다. 재소자 상당수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채 재판을 받았다.

“요즘은 사법 제도가 개선돼 경제적으로 곤란한 구속 피의자는 국선변호사가 선임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재소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감방에서 재소자 탄원서를 써주고 법정에서 어떻게 말한 것인지를 조언해주면서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재능’을 발견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2001년 사법시험에 처음으로 응시했다. 다섯 차례 도전한 끝에 2007년 합격했다.

그는 지난해 광주지법에서 국선변호인 분야 우수 공익변호사로 선정됐다. 교도소에서 봤던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터라 그는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면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그는 “광주 지역도 변호사가 많이 늘어 여건이 좋지 않지만 가능하면 공익적 가치를 지닌 소송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5·18 왜곡 소송 참여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 회고록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회고록 중 5·18 부분에서 인용된 문건 대부분은 신군부 인사들이 1995년 5·18특별법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서 진술하거나 1988년 국회 5·18특위에서 주장한 내용들입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이야기인 거죠.”

정 변호사는 회고록에 인용된 신군부 인사들의 주장은 대법원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고록 1편 ‘혼돈의 시대’가 처음 발간될 당시 170쪽 분량에서는 ‘전 전 대통령은 5·18과 무관하다’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 등의 왜곡된 주장이 들어 있었다. 회고록에 인용된 각종 문구 89건 가운데 60여 건은 신군부 인사나 5·18 당시 계엄군 영관급 장교들의 진술이다. 이희성 5·18 당시 계엄사령관의 주장은 회고록에서 12차례나 인용됐다.

대법원은 1996년 전 전 대통령에게 5·18 무력진압 책임 등을 유죄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의 시민군을 학살하는 데 참여했다며 내란목적 살인혐의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정 변호사는 “대법원이 전남도청 시민군 학살 부분만 인정해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했지만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명령자가 밝혀지면 그 사람에게도 같은 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5·18 역사 왜곡과 함께 집단발포 명령자를 규명하는 것이 5·18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2013년 민변 광주전남지부 간사를 맡아 5·18 역사 왜곡 소송에도 참여했다.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등에서 5·18 왜곡이 심해지자 광주시와 시민사회단체는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변호사들로 법률지원단을 꾸렸다.

그는 5·18 왜곡에 대응하는 일을 하면서 지만원 씨를 상대로 한 형사소송 4건에 참여했다. 5·18단체 회원들이 지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법률대리를 위해 5·18 당시 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각종 증거도 확보했다.

“5·18 왜곡은 지 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 씨의 왜곡된 주장이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그는 “이런 점에서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개인적 변명이 아니라 그동안 나온 5·18 왜곡 주장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해서는 민형사 소송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형사소송은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묘사한 데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다. 민사소송은 회고록 내용 가운데 33건이 허위라며 낸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이다.

법원은 올 8월 회고록 내용 33건을 삭제하지 않고 책을 판매하고 광고하면 회당 500만 원을 5월 단체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전 전 대통령 측은 10월 회고록 내용 33건에 검은 덧칠을 해서 재발간했다.

정 변호사 등은 재발간된 회고록을 분석해 허위 내용을 추려내 이달 말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를 위한 2차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그는 5·18 진실 규명과 5·18 유가족들의 한을 풀기 위해선 소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여긴다. 독일이 나치 학살을 왜곡하는 범죄를 국민선동법으로 처벌했듯 사회가 약속한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5·18 왜곡을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하며 해당 법률에는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5·18민주화운동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자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국민적 공감입니다. 이런 공감이 확산돼서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을 때 민주주의는 더욱 활짝 꽃피울 것입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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