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보다 자동차 기술 앞섰던 영국, 뒤쳐지게 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7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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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독일이 자동차 강국이 된 데는 영국이 큰 몫을 했다는 말이 있다.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할 정도로 자동차 기술과 인프라가 앞섰던 영국. 그러나 그들은 그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자동차가 도로를 다니기 시작하면 직업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한 마부들을 위해 만든 법인 적기법(Red Flag Law) 때문이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괴물’로 인한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그 법은 자동차 앞에 기수를 세워 행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빨간 깃발을 휘두르는 기수를 앞세운 자동차의 속도는 최고 16km, 시가지에서는 8km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말보다 느린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영국이 적기법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독일이 어부지리 기회를 얻었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적기법이 우리 사회에는 없을까?


7살 막내가 제 생일 선물을 고르겠다고 해서 동네 문구점에 간 날, 단골 아이를 반기며 주인은 푸념부터 늘어놓는다. D사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방금 그곳에 들렀다 온 필자가 괜히 찔끔하여 이유를 되묻자 예상 가능한 답이 나온다. 손님들이 ‘무엇이든 다 있다’는 그곳으로 몰리는 바람에 동네 문구점이 타격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어디선가 들어본 기시감이 든다. ‘깔끔하고 카드도 받아주고 24시간 문 연다’는 편의점으로 업태를 바꿨다는 삼거리 식료품점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동종의 편의점이나 새로운 업태의 가게들로 장사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문구점, 식료품점뿐이겠는가? 동네 빵집은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로, 재래시장은 대형마트로, 옷가게는 아울렛 할인매장으로 같은 품목, 같은 장소지만 간판은 바뀐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아이들 수 자체가 줄어드는 저출산 상황에서 안 그래도 불량식품, 불량장난감, 정체불명의 오락기계 때문에 동네 문구점을 곱게 안 보던 엄마의 마음이, 뽀얗게 먼지 쌓인 채 뒤섞인 상품 매대에서 필기구를 고르는데 익숙지 않은 요즘 아이의 마음이 동네 문구점으로 가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걸 어쩌겠는가.

동네 상권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는 문구가 타깃인가 보다. 초중고교 학생 수의 감소, 2011년부터 시작된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등의 여파로 문구시장 전체가 하락세를 맡고 있다. 영세한 동네 문구점의 타격이 더 큰 상황에서 있던 고객마저 D사 같은 새로운 업태에 뺏기고 있다는 주장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특정 회사 탓으로 돌리는 모양새는 소비자 입장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고객이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임의로 막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에서 정답은 아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대형 체인서점에 밀려 문을 닫게 된 뉴욕의 어린이 서점 이야기다. 그러나 영세 서점의 우울한 미래를 얘기하는 대신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닌 동네 아이들을 모아 ‘책을 같이 읽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20년 후 지금, 영화에서 예언한 대로 동네 서점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된 우리 상황에서 이는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

한동안 동네 서점의 몰락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대형 서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대형화라는 변화의 물결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제는 온라인 쇼핑의 증가로 오프라인 대형서점이 힘들다고 울상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이색적인 아이디어로 세인의 관심을 끄는 작은 서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정된 소비자의 지갑을 뺏는 자와 뺏기는 자가 뒤섞이고 뒤바뀌는 초경쟁 사회의 단면이다. 단순히 크기를 문제 삼아 큰 곳은 나쁘고 작은 곳은 피해자다 양분 하는 대신 서로의 갈 길을 다르게 가는 것은 어떨까?

소비자의 선택권을 막을 수는 없다. 소비자는 목적에 의해 선택을 한다.‘모든 것이 다 있다는 곳’에 간 김에 필요 했던 필기구를 살 수도 있고, 전문가용 펜이 필요해서 펜 전문점으로 갈 수도 있다. 단골을 반겨주는 사장님과의 관계 때문에 하굣길마다 학교 앞 문구점에 들를 수도 있다. 문구업계도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세상의 필기구를 모아 체험하게 하는 콘셉트 스토어도 생겼고, 나만의 필기구를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빈티지문구류 전문점도 있다. 특정 연필만을 취급하는 곳, 문구를 예술품으로 디자인 한 곳도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사례는 자본도 역량도 부족한 영세 문구점들에게는 먼 얘기일 수 있다.그리고 현대 자유시장 경제가 꼭 정글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큰 기업이 자본과 힘으로 눌러 시장을 독점하려는 것에 대한 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업태를 만들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해당 업태를 효율화 시키고, 소비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하며 성장한 회사에게 매출 1조 원을 넘어설 만큼 커졌다는 이유로 새로운 규제를 가한다면 기업을 일구고 시장을 개척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미래를 뺏는 것이 된다. 기업을 키워 봤자 그 자체가 굴레가 된다면 힘들여 키우는 과정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서 받아야 하겠는가?

큰 기업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를 키우고 사회의 부를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는 규모에 맞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 옳은 것인지, 영세 경쟁자를 돕기 위해 기업이 더 커지지 못하도록 규제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권을 제한했지만 그 수요가 재래시장에 되돌아갔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소형 업태를 대형화 하라고 강요할 수 없고, 대형 업태를 소형에 맞추라고 할 수도 없다. 어느 한쪽을 임의 규제하기보다 모두의 파이를 키워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서로의 길이 다르다.

조미나 휴먼솔루션그룹 조직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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